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수많은 정보가 물밀 듯이 밀려드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PC와 인터넷은 일상화된지 오래며 손안에 스마트폰으로 다른 사람, 다른 세계와 언제 어디서든지 소통하고 있죠. 이렇듯 정보의 홍수 속에서 타인과 끊임 없이 소통하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단순히 정보의 습득을 넘어 올바르게 정보들을 분별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와 같은 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에 공통된 리터러시(literacy)란 말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인 문해력’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런 개념들의 핵심에는 ‘문해력’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즉, 아무리 온라인 시대라 한들 기본적으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겐 그 많은 정보들이 아무런 쓸모가 없거나 피상적인 정보로 머물게 되고 맙니다. 문제는 이처럼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높은 수준의 문해력이 요구되지만 우리의 문해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년 전, 한 공영방송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해력에 대한 TV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초·중·고·대학생들은 물론 직장인 등 일반시민들의 문해력 수준에 대해 보여주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성인남녀 833명을 대상으로 한 ‘성인 문해력 테스트’에서 평균 정답률은 55%에 머물렀고 2~30대 젊은 직원들의 국어능력을 묻는 질문에 기업 10곳 중 6곳에서 부족하다고 대답했습니다. 대학생들의 36%, 중학교 3학년의 35%만이 적정 수준의 문해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고등학교의 영어, 역사 시간은 학생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단어의 뜻을 몰라 수업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심심한 위로, 존귀하다, 사흘, 고지식하다, 을씨년스럽다라는 말들의 의미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물론 짧은 동영상과 이미지에 익숙해져 버린 세대들의 문해력 저하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물론 외부의 적절한 자극이 주어져야 그 능력이 정상적으로 발현되지만요. 하지만 문자는 인간에 의한 발명품이기 때문에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은 인위적으로 배우고 익혀야 갖게 됩니다. 곧, 글을 읽고 쓰는 문해력이란 그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개발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퇴화될 수도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결국 최근의 문해력 저하는 사람들이 줄글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세태의 반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글을 읽는 행위는 우리의 뇌에 어떤 작용을 하며 우리의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질까요? 점점 저하되는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의 뇌는 각기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전두엽이란 부분은 우리 뇌에서 추론, 결정, 계획, 집행, 통제 등의 고등사고력과 관련된 기능을 담당하며 감정을 조절하는 역할도 합니다. 또한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을 저장해주기도 하지요. 따라서 전전두엽이 활성화되지 않거나 문제가 생기면 그만큼 인지능력도 떨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신기한 것은 같은 정보라도 오디오북으로 듣거나 동영상을 볼 땐 큰 반응이 없는 전전두엽이 글을 읽을 때는 크게 활성화 된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글을 읽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능동적인 정보 처리 과정이며 자신의 뇌를 고차원적으로 훈련시키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처럼 영상은 읽기를 온전히 대체할 수 없습니다. 읽기의 역할은 단순히 정보를 얻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치로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결국 문해력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학습의 출발은 먼저 텍스트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고 그를 위한 사고(思考)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성적이 떨어지면 해당 과목의 학원부터 보내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는 학습부진의 주된 원인이 부족한 문해력에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입니다. 무작정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기 전에 먼저 해야할 일은 아이의 문해력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한 뒤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운동을 배울 때 일정수준의 기량을 갖추려면 먼저 기초체력과 최소한의 단련된 근육이 있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문해력도 뇌발달이 가장 활발한 초등학교 취학 전 어린 시절부터 단련하는 것이 효과가 가장 좋다고 합니다. 부모와 같이 소리내어 책을 읽으며 자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언어능력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는 큰 설명이 없어도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지난 칼럼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저는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며 함께 보내는 저녁 시간은 그 무엇보다 값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쁘고 피곤하더라도 우리 젊은 부모님들이 사랑하는 자녀와 함께 잠들기 전 같이 책을 읽는 시간을 꼭 가지셨으면 합니다.
여기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은 문맹률과 문해력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구상 그 어떤 문자보다 배우기 쉬운 한글 덕분에 글을 읽고 쓰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습니다. 2008년 국립국어원이 실시한 국어 능력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문맹률은 1.7%에 불과할 정도죠. 하지만 글을 읽을 수는 있으나 글 속에 있는 단어, 문장,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글을 읽은 것’이 아닌 단지 한글의 자음과 모음에 대응하는 ‘소리를 내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한 학생이 에어컨 ‘실외기’를 ‘시래기’로 적은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즉, 글자를 읽을 수 있는 것과 글자의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문맹률이 1.7%에 불과한 나라의 학생들이 60%가 넘는 적정수준 미달의 문해력을 가지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조금 더 냉정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문해력과 관련한 학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먼저 기본적인 문해력 개발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입니다. 학교의 역할도 있지만 우리는 이제 자녀의 교육을 오롯이 국가가 담당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가정은 많은 부분에 있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1차 교육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난 후 미처 개발되지 못한 부분은 취학 후 공교육에서 수시로 체크하고 관리해줘야 합니다. 요즘 세대의 문해력 저하는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여서 외국에서도 초·중·고 과정에서 촘촘히 학생들의 문해력 수준을 체크하고 맞춤형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교육에 이러한 빈틈을 메워줄 수 있는 시스템이 잘 정비되어 있는지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에 더해 제가 드리는 한 가지 제안은 국민들의 전반적인 문해력 향상을 위해 한자(漢字)교육을 더 강화하면 어떨까 합니다. 보통 한자는 오늘날 중국의 문자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약 3천년 전부터 동아시아 문화권이 넓게 공유하며 사용한 문자였기에 오늘날 국어 어휘의 약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엄연한 국어의 일부입니다. 당장 한자로 이루어진 어휘들이 없어진다고 하면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할까요? 때문에 한자교육은 국어교육이지 외국(중국)의 문자를 배운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자는 한글과는 달리 글자 각각이 뜻을 담고 있는 표의(表意)문자이기 때문에 소리를 전달하는 표음(表音)문자인 한글을 적절히 보완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위에서 예를 들었던 ‘실외기’ 같은 경우도 ‘집 실(室)’자와 ‘바깥 외(外)’자를 알고 있는 학생이라면 ‘집 바깥에 있는 에어컨의 부속 기구’라는 상황을 통해 어느 정도 단어를 추론, 조합할 수 있어 소리가 나는 대로 ‘시래기’라 대답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배울 학(學)’이라는 한자 하나를 통해서도 여기에서 파생되는 학교(學校), 학원(學院), 학생(學生), 학력(學力), 학습(學習), 휴학(休學), 퇴학(退學), 유학(留學), 학자금(學資金), 만학(晩學), 학도병(學徒兵) 등의 단어들을 맥락을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확실히 해둘 것은 한자 하나하나 모두를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학’이라는 한글이 쓰인 단어를 상황과 맥락을 통해 ‘배울 학(學)’인지, ‘새의 종류인 학(鶴)인지’, ‘사나울 학(虐)’인지를 알고 구분할 수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이렇듯 기본적인 한자들을 알면 기존에 알고 있는 국어단어의 뜻도 보다 정확히 이해하게 되고 생소한 단어를 접하는데 있어서도 상황과 문장의 맥락 속에서 유추하는 능력이 향상되게 됩니다. 나아가 새로운 단어의 조합도 창의적으로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개개인의 사고력도 깊고 넓어지게 되겠죠. 저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년에 150자씩 8년간 총 1200만 알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산술적으로 학교를 다니는 동안 익혀야 하는 양이 하루에 한글자도 되지 않습니다. 문해력 향상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 이보다 효과적인 투자를 저로서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학이 발전하고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인간이 문자를 사용하는 한 문해력은 문명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있어 삶의 가장 기본이자 핵심이 되는 능력입니다. 오히려 이미지와 동영상이 범람할수록 ‘글을 읽고 올바로 이해하는 능력’의 가치는 반대로 점점 상승하게 될 것입니다. 문해력과 관련된 여러 연구는 문해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소득, 자신감, 행복감도 높으며 심지어 수명까지 길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쓰는 문제를 넘어 한 사람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있을까요? 어떤 부모든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공평한 재산인 문해력. 오늘 저녁 스마트폰은 잠시 내려놓고 책을 함께 읽으며 내 사랑하는 자녀에게 문해력을 선물해 주시는 건 어떨까요.
「이병학 충남교육혁신연구소」 소장 이병학
※참고문헌 - 「EBS 당신의 문해력」, EBS북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