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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심할 때 읽으면 좋은 성경인물 시리즈 《사도바울Ⅱ》
    사도바울이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예루살렘에 얼마나 머물었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추정이 가능한 것은 그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했던 행동으로는 아마도 산헤드린 회원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산헤드린이라는 소논문을 담고 있는 탈무드의 자료에 따르면, 대산헤드린은 71명의 현자들로 구성된 법정이었고 종교적 입법기관으로서 '법'은 이곳에서 나와 모든 이스라엘에 공표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왕과 대제사장 임명, 전쟁선포, 예루살렘과 성전의 세력범위 확장 등을 명할 수 있었으며, 사법적으로는 대제사장, 거짓 예언자, 반역죄를 지은 원로, 잘못한 지파를 심판할 수 있었습니다. 대산헤드린은 66~70년 예루살렘에서 사라졌으나 후일 팔레스타인의 다른 지역에서 소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산헤드린의 회원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산헤드린 회원에게 주어진 권한에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에 반하는 모든 세력들을 정죄할 수 있는 투표권이 있었으며 스데반과 논쟁할 때, 그 자리에 사도바울도 있었을 것이며 그를 죽이는 데에도 찬성의 투표를 했을 것입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행6:8~9 전통적이며 율법적인 신앙으로 굳어져 있었고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에게 있어서 스데반을 위시한 그리스도인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말을 하는 자들(행6:11)”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못 박히신 예수님을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유대민족을 독립시키고 다윗의 왕처럼 강한 힘으로 오실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였으며, 유대교에 대한 비판은 모세의 권위와 율법을 파괴하는 행위로서 모두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철저한 적개심을 갖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모든 사람들을 근절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가 어려서부터 배우고 익힌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고 도덕적으로는 결함이 없는 사람이었으나,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암적인 존재였습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1:13 당시 사도바울의 유대교 신앙은 복음이라는 새로운 그리스도교를 전하고 십자가에 처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추종 세력을 대적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었으며 그런 자신의 행위가 신앙을 지키는 양심에 의하여 마땅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행29:9~11 그의 이런 유대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변론하는 스데반을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일 때 당연한 것을 여겼습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행7:58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행8:1 사도바울의 그리스도교를 믿는 제자들과 개종한 사람들에 대한 핍박은 스데반을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이 선교사로 파송되어 전도하고 있는 주변국의 도시로 파급되었습니다.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행26:11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교가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한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극심한 적개심을 품고 그들을 멸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여 그리스도교를 쫓은 사람을 만나면 남녀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급하게 떠나게 됩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행9:1-2 시리아의 수도 다메섹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그들 중에는 예수님의 생전에 가르침을 듣고 개종한 사람들도 있었으며, 오순절 날 예루살렘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온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에 의해서 전도되어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스데반의 죽음으로 위축된 개종한 사람들이 핍박을 피하여 그곳으로 옮겨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으로 가득 찬 바울은 다메섹에 가까이 도착하여 자신이 찾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심판할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 바울 앞에서 로마의 핍박을 피해 이주해 온 사람들은 풍전등화와 같이 언제 잡혀서 끌려갈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은 살기가 가득한 상황이었고 그 성에 숨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굶주린 늑대 앞에 선 어린양이었습니다. 그때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사울에게 비추었습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9:3 그 빛은 사도요한이 증거한 빛의 근원이 되는 하늘의 빛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었습니다. 그 빛은 사울뿐만 아니라 사울과 함께 했던 일행까지도 알 수 있는 빛이었습니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행26:13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어두움을 몰고 가는 바울에게 찾아오셔서 은혜롭게 빛을 발하시며 그에게 인자하신 말씀으로 거룩한 삶을 위한 사명으로 초대를 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행9:6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바울을 땅에 엎드려 졌고, 예수님의 음성을 깨닫지 못했던, 처음 바울과 동행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다메섹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다메섹에는 바울이 찾아서 죽이고자 했던 사람들 중 아나니아라는 예수님의 제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행9:10-11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행9:10-19 사도바울의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핍박은 소문만으로도 아나니아 역시 알고 있었고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바울이 주님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아야 할 것과 이방인과 당시 지배계층의 사람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는 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그릇이었음을 자상하게 설명하시고 아나니아에게 안수하여 예수님의 계획을 말하게 하시고 성령이 임하는 것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한 후 바울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목적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에게 다메섹으로 오는 길은 종교적 열정과 소속된 인맥으로 인한 가시밭길 이었습니다. 그에게 보여지는 종교적 열정 외에 심경의 변화는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그것을 해야 자신의 삶의 공간과 자리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스데반의 논리정연하고 죽음 앞에서 당당하게 외치는 설교에 놀랐고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의 옷을 지키며 스데반이 죽음 앞에서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기도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에 의해서 자신의 삶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 왔지만 스스로 벗어 날 수 없는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결단을 내릴 수 없이 흐르는 시간에 자신을 맡겨 두었던 것입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사도바울이라는 기독교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을 부르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바울을 마음을 아셨던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도 바울의 당시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행26:14 이 광경은 사도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증거 할 때,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해서 설명한 내용입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동안에 갖고 있는 그의 마음이었으며 이를 아셨던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면서 위로해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이는 스데반 집사로 인해서 변화된 자신이 진정한 하나님을 반역하고 핍박한다는 것은 마치 가시돋힌 채찍을 뒷발질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저항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리는 어리석은 일이며 악하고 고통스러운 행위였다는 것을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스데반이 만난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자신에게 사명을 주셨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었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삶의 변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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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7
  • 심심할 때 읽으면 좋은 성경인물 시리즈 《사도바울Ⅰ》
    하나님의 사랑을 독특하게 받았던 바울은 12제자를 포함한 어떤 제자들보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적합하게 훈련되고 경험되어진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교 율법에 관한 지식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학식이었으며 그에 따르는 실천도 거짓이 없는 진실이었습니다. 그의 이방인 선교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태생과 초기 활동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바울의 사역은 A.D. 30년경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초대교회 역사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동참했고 그 자리에 있었던 스데반집사의 순교로부터 이어지는 교회의 대 박해에서 활약을 드러내기 시작한 바울은 이후 A.D.58년 제 3차 전도여행까지 이어지며, 그가 사역할 당시 예루살렘의 분봉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A.D. 41-44)였습니다. 바울의 유대식 이름인 사울은 사도행전 13장 9절까지 언급되어지고 이후에는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됩니다.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는데 제롬(Jerome 342-420)에 의하면 바울은 갈릴리에 있는 기살랴에 살다가 로마가 팔레스틴을 정복하던 때에 다소지방으로 이주하였다고 합니다. 유대법은 소년이 다섯 살이 되면 성경공부를 시작하고 열 살이 되면 율법전승을 공부해야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역시 어려서부터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유대인들이 고귀하게 생각하는 육체노동과 지적 능력이 신체적 활동성과 병행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서와 전통을 공부하는 한편, 당시에 중산층 이상이 가질 수 있었던 직업인 천막 제조 기술을 익혔던 것입니다. 13세가 되면 유대 소년은 「바르미츠바(계명의 아들)」가 되어 전적으로 율법을 지킬 책임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가말리엘(Gamaliel) 1세의 문하에서 조사들의 엄한 율법교육을 받았습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행22:3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빌3:5 바울이 자란 다소 지역은 상업과 정치권력의 중심지이며 대학도시로써 학문에 대한 열심과 지적 수준이 매우 높았으며 특히 스토아철학자들이 유명했던 지역이었습니다. 또한 국제도시로 세계적 교류가 가능했고 역사적 도시로써 그곳에 사는 시민들은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했습니다. 다소출신의 이방 선교사가 필요했음은 그 지역의 특징으로도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며 특히 그곳이 이방세계의 물결이 합류되고 모든 세계의 사람들이 무역관계로 이곳에 몰려들었습니다. 바울의 출신 성분과 교육 그리고 그의 삶의 자리였던 다소에서 그는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로서 당시 외국인이 가질 수 없는 로마 시민권이 있다는 것은 상당한 부유층에 속하는 계급이었을 것이며 가문 역시 물질적, 정신적, 지적 수준이 매우 높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바울이 가졌던 해박한 율법의 지식, 바리새적 훈련, 헬라철학의 소양은 신앙과 결부되어 조화를 이룬 위대한 사상을 가졌으며 그가 복음을 접목한 뒤에는 기독교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전파하기 가장 적합한 이상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행9:11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행21:39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유대교식 교육과 경험에 나오는 율법과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의 사명에 있어서 문제시 되는 것이 율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율법에 대한 태도는 갈라디아서에서 유대인들의 독특한 관습이나 법들이 처음의 의도와는 달르게 인간의 삶을 제한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선민으로서 관습인 할례와 안식일을 지키는 법, 식사예절 등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당시 바리새인들이 자주 시비거리를 만들던 관습이었습니다. 특히, 할례는 유대인들이 남자아이를 낳은 지 8일 만에 행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의 일부 내용에 따른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교로 개종하는 모든 남자는 의무적으로 할례를 받도록 되어 있었는데 기독교로 개종해야 하는 사람에게 모두 적용시킨다면 관습에 대한 공포로 전도의 효과는 지금과 같이 않았을 것입니다. 참고로 1세기 할례는 마취도 없이 칼로 남성의 표피를 잘라내는 것이었기에 유대인들과 다른 문화권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부당한 것이었으며 만약 바울이 할례 받기를 고수했다면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데 기존의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갈5:11 그러나 바울의 할례에 대한 관습을 철저하게 저항하며 율법이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박하고 갇힌 자가 되게 하므로 인간에게서 자유가 없어졌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3:21~23 사도바울이 전하는 율법의 관습은 진리가 아니며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폐지해햐 하는 것이며 그래야만 이방인들에게 십자가의 도를 전할 수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 자체가 인간을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인이 된 것처럼 믿음으로 의로다 함을 받게 되며, 그 결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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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재
    2023-03-24
  • 짬짬이 읽는 신학 이야기
    미국의 『크리스천 월드』라는 종교 잡지에서 세계 50대 교회 가운데 한국에 있는 교회가 23개가 된다고 보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기독교 역사로 봐도 괄목할만한 성장이며 가부장적인 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시대 암흑의 시대를 넘어 6·25 동란이라는 전쟁을 겪은 민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외적인 성장을 중심으로 교인의 수를 확장하는데 열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한국교회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도덕적 영향력이 미미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매일의 뉴스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한국 사회는 폭력이 난무하며 거짓과 부정부패 그리고 타락과 향락, 이기심과 빈부의 격차가 심화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는 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서 정치경제 사회적인 문제를 뒷순위로 한다면, 단연 앞장설 것은 교회 부흥과 맞물려 경제를 발전했던 한국이기에 사랑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길 원하셨던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성실히 이행하지 못한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책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따르던 무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라’라고 말씀하셨지만, 작금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천국의 비유로 말씀하셨던 것처럼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만큼 힘든 사명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은혜에 의한 한국교회의 부흥 성장 이전의 한국 역사를 환란과 고통의 역사라고 한다면, 위대한 성경 인물들의 삶 역시 환란과 고통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을 성경을 통한 증거로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고 전한 것처럼 하나님 은혜의 이면에는 반드시 수반되는 과정으로서의 고난의 길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의 성장에서 고난의 경험은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한 사랑으로 함께 하시는 절대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한계적인 지식에서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의 경험에서 다듬어지며 변화됩니다. 즉 내적 갈등을 수반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이며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에 순종하게 되고 자신의 한계를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성취 가능하게 하는 겸손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속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고난의 과정은 신앙 성숙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며 자신의 이기를 목적으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적인 삶으로의 전환이 되는 거룩한 길입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성경 인물들의 삶을 조명해 보면서 그들의 삶에 내포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고 각자의 환경에서 순종하는 방법과 주신 사명에 대한 깨달음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실천하는 소망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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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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