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3-1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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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학 충남교육혁신연구소」 소장 이병학

 

 올해 2025년은 3.1운동 제106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1910년 8월 22일, 조선(경술국치 당시는 대한제국)은 오랜 시간 쌓여왔던 내부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일제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하였습니다. 오랜 시간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유교적 신분제에 고통 받았던 민중들은 또다시 외세의 압제에 놓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제는 이른바 무단통치를 통한 폭력으로 한반도 지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1910년대 말, 세계사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914년에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이 1918년 종식되면서 당시 미국의 대통령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1856~1924)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 에 의해 식민지에 처한 국가들이 독립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민족자결주의」란 ‘각 민족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선언은 전세계의 식민지 국민들을 크게 고무시켰고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도 이에 호응하여 그동안 물밑에서 숙줌여 왔던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에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발표했고 이것이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촉발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전국민이 참여하는 전국적 운동으로 파급되었고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3.1운동입니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퍼진 3.1운동의 불길은 충청남도에도 다다랐고 충남 최초의 만세운동은 3월 6일 부여군 충화면에서 일어났다고 전해집니다. 그 후 유명한 유관순 열사의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포함하여 4월까지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충남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이 운동들은 유학자, 천교도인, 기독교인, 불교인 등 종교인들을 비롯하여 학생, 상인, 농민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특히 충청지역에선 밤에 마을 근처 산에 올라 횃불을 들고 만세를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폭력운동을 지향한 3.1운동은 일제의 강력한 진압에 못이겨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온 민족이 염원하던 독립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독립을 향한 염원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였을 겁니다. 애초에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패전국 식민지에게만 해당하는 외침이였고 일본은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 중 하나였으니까요. 이렇듯 20세기 초의 국제정치란 힘없는 민족에겐 한없이 비정하고 냉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3.1운동의 역사적 의의가 퇴색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3.1운동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닌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의 압제에 억눌려왔던 한국인들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모든 사람들이 대동단결해 전국적으로 폭발시킨 최초의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1984년 갑오개혁에 의해 법적으로 폐지된 신분제이지만 그때까지도 신분제의 관습이 몸에 벤 아직은 전근대적 조선인이라 할 수 있던 민중들이 3.1운동을 계기로 신분, 계급, 지역을 넘어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3.1운동을 통해 한국인이 하나의 근대민족으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한국인들의 전국적 반발에 부딪힌 일제가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통치방식을 바꾸게 되었으며 국제적으로는 중국의 5.4운동, 인도,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 각국의 민족운동에도 자극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성립은 전적으로 3.1운동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3.1운동 전부터 민족 지도자들은 임시정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는데 초기에는 한성 임시정부, 중국의 상해 임시정부, 러시아의 대한국민의회 등 여러 지역에서 각자의 세력을 바탕으로 조직되었습니다. 이렇게 한반도를 비롯하여 해외 각지에서 중구난방으로 존재하던 독립운동 구심체들이 3.1 운동을 계기로 통일된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고 서울의 한성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러시아 대한국민의회와 상해정부가 합쳐지는 형태로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11월 본격적으로 출범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는 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내무총장 이동녕, 외무부장 박용만, 군무부장 노백린, 재무총장 이시영, 법무부 차장 신익희, 노동국총판 안창호, 경무국장 김구 등 당시 대표적인 독립운동 세력들과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임시정부는 곧이어 계파분열 및 독립운동 노선의 차이와 지역 출신 간 대립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상징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였기에 한국인들은 독립에 대한 자신감과 사명감을 해방일까지 지속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민국 헌법도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함으로써 오늘날에까지 그 영향력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큰 사건인 3.1운동 가운데에 우리가 알지 못하고 지나친 충남의 인물들도 많습니다. 천안의 유관순 열사야 너무 유명하지요. 하지만 충남에 유관순 열사만 있던 것은 아니였습니다. 각 지역별로 대표적인 인물들만 언급해 보자면 아산의 신치공(申致公), 예산의 이은배(李殷培), 홍성의 강태산(姜泰山), 공주의 박윤근(朴潤根), 부여의 박용화(朴容和), 보령의 이홍규(李洪圭), 서천의 정일창(鄭日彰), 논산의 박금봉(朴今奉), 금산의 구호열(具鎬烈), 청양의 박상종(朴商鍾), 서산의 남성희(南星熙), 태안의 이종일(李鍾一), 당진의 고희준(高熙俊)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물론 이름모를 수많은 영웅들의 용기와 희생을 우리는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필자인 저 역시 천안이 고향인 충남인입니다. 백여년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가며 활동했던 선조들이 우리 고장 충남에도 많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3.1절을 맞아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몸바친 선조들을 생각하며 저 역시 우리 고장을 위해, 이 땅의 미래 세대들을 위한 교육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봅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이러한 선조들의 노력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 정신을 올바로 계승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자유와 독립이 어떻게 이 땅에서 지켜졌는지, 왜 자유와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는지를 생각하며 우리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독립정신’을 되새겨야 합니다. 자유와 독립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그 소중함을 잊어가는 순간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유와 독립이 침해되고 위협받을 때,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자유를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걸 우리 모두 깨달아야 합니다. 자유와 독립은 그것을 위해 스스로 싸워 쟁취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와 독립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랍니다. 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호국영령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인명 참고 사이트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인명 참고 서적 <한국독립운동사, 역사문제연구소>


「이병학 충남교육혁신연구소」 소장 이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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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3.1운동 정신의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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