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핀란드산 북극여우 모피 99% 국내 유입…동물복지 논란 확산
한국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하게 사육된 이른바 '괴물여우'의 모피를 대량으로 수입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동물보호단체의 잇따른 고발과 세계은행 통계를 통해, 국내 모피 수입 구조가 동물학대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겁먹은 듯 웅크린" 거대 여우…모피 위해 선발육종
최근 공개된 사육 실태 영상에는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몸집이 커진 북극여우들이 담겼다.
피부는 비정상적으로 접혀 늘어져 있었고, 눈과 몸 곳곳에는 심한 염증이 발견됐다. 철창 안에 갇힌 여우들은 겁에 질린 듯 웅크린 모습을 보였다.
이 여우들이 '괴물여우'로 불리는 이유는 오직 더 많은 모피를 얻기 위해 몸집이 큰 개체를 골라 번식시키고, 고열량 사료로 최대한 체중을 불렸기 때문이다. 사육 환경이나 건강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유럽식품안전청(EFSA)에 따르면 1990년대 도살 시점 북극여우의 체중은 7~8kg 수준이었으나, 가장 최근 비교 가능한 수치인 2014년 기준으로는 20kg까지 늘어났다. EFSA는 빠른 성장과 큰 몸집을 노린 선발육종이 굽은 발과 앞다리 변형, 골연골증 등의 유전적 소인과 연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체중이 실리면서 다리와 힘줄·인대에 부담이 가중되고, 움직임을 꺼리게 되면서 상태는 더욱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韓, 핀란드산 여우털 99.2% 수입…"주 수입국" 지목
문제는 이 같은 모피 산업이 결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3년 국내에 들어온 여우 원피 수입액은 149만6830달러(약 20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99.2%가 핀란드산인 것으로 확인됐다.
핀란드 모피경매업체 사가퍼스(Saga Furs)가 지난 3월 진행한 경매에서도 북극여우 모피 14만9000장이 판매됐으며, 업체가 공개한 주요 구매 시장 명단에는 한국이 포함됐다. '괴물여우'로 만들어진 모피가 실제로 국내에 유입되고 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 中 모피농장서도 학대 정황…"산 채로 가죽 벗기기도"
괴물여우는 모피산업 전반에 걸친 동물복지 문제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밍크와 여우, 너구리 등 다양한 동물이 모피 생산 과정에서 희생되고 있으며, 일부 농장에서는 살아있는 상태로 가죽을 벗기는 등 열악한 사육 환경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지난 5월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스가 공개한 중국 모피농장 5곳 조사 영상에는 수천 마리의 밍크와 여우, 너구리가 좁은 철망 안에 갇힌 채 제자리를 맴돌거나 머리를 벽에 부딪히는 등 정형행동을 보이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에는 밍크를 둔기로 때려죽이는 장면도 포착됐으며, 여우와 너구리는 입과 직장에 전극을 삽입해 감전시키는 방식으로 도살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 中 도살 규모 10년새 90% 감소했지만…시장 규모는 여전
이 같은 잔혹한 생산 방식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세계 모피산업은 위축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최대 모피 생산국인 중국에서도 모피를 위해 사육·도살된 동물 수가 지난 10년간 약 9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시장 규모는 여전히 크다. 사가퍼스가 지난 3월 진행한 경매에서는 밍크와 여우, 너구리 모피 등 총 340만 장이 판매됐으며, 판매액은 2억2000만유로(약 3400억원)에 달했다. 이달에도 대규모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모피 외에 캐시미어, 앙고라 등 동물성 섬유 산업에서도 유사한 학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캐시미어는 인도 카슈미르나 티베트에 서식하는 염소·산양의 속털로 만들어지며, 한 마리당 연간 생산량은 250g에 못 미친다.
현재 생산량의 90% 이상이 중국과 몽골에서 이뤄지고 있다.
동물권 단체 PETA 아시아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중국과 몽골의 캐시미어 산업을 조사한 결과, 대다수 농장에서 극심한 잔혹 행위가 확인됐다. 작업자들이 염소를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날카로운 금속 빗으로 털을 채취하는 방식이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 "명품 위해 어느 정도 고통 감수할 것인가"…규제 목소리 확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류 산업에서의 동물 이용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주요 수입국들에 사육 환경 등 동물복지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프로젝트1882의 베니 안데르손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영상은 심각한 동물복지 문제가 여전히 모피산업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유럽연합(EU)이 모피산업의 미래를 논의하는 지금, 정책 결정자들은 명품을 위해 어느 정도의 동물 고통을 감수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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