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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침묵이 만든 감옥, 30년간 아무도 몰랐다

  • 이현 기자
  • 입력 2026.03.26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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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생성 이미지. 실제 사건과 무관

 

40대 여성 A 씨는 30년을 버텼다. 맞으면서도 참았고, 쓰러지면서도 일어났다. 자녀들이 상처받을까 봐 입을 닫았고, 시부모 앞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척 웃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다. 그리고 지난해, 제삿날을 잊었다는 이유로 발에 밟히고 주먹에 맞아 전치 8주 진단을 받고서야 세상이 그 사실을 알았다.

 

도대체 우리 사회는 이 여성에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폭력은 '가정사'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는 뿌리 깊은 착각이 있다. 부부 사이의 일은 '집안일'이고, 남이 끼어들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가정폭력이 수십 년간 반복되어도 이웃은 모른 척하고, 친척은 '잘 풀어보라'고 하며, 심지어 피해자 본인조차 '내가 참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러나 폭력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명백한 범죄다. 

남편이 아내를 발로 밟고 주먹으로 때리는 행위는 타인을 폭행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 집에서, 가장 믿어야 할 사람에게 당한다는 점에서 죄질은 더 무겁다.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폭력을 가리는 방패가 되어선 안 된다.


피해자는 왜 30년을 침묵했는가

 

A 씨의 침묵을 단순히 나약함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면, 그것은 피해자에 대한 두 번째 폭력이다. 

그녀가 침묵한 이유는 분명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오빠에게 추행을 당한 뒤 어머니마저 집을 떠난 그녀에게, 세상은 단 한 번도 '네 편'이 되어준 적이 없었다. 

기댈 곳 없는 사람은 아무리 부당한 현실도 견디는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평균 7번 이상 피해를 반복해서 겪은 후에야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다는 통계는 괜히 나온 수치가 아니다. 

사회가 피해자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A 씨처럼 원가족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불신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침묵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침묵하게 만든 구조가 잘못된 것이다.


효자 코스프레, 그 이중성의 민낯

 

더욱 소름 돋는 것은 남편의 이중성이다. 

시부모 앞에서는 세상 둘도 없는 효자였고, 자녀들 앞에서는 다정한 아버지였다. 그러나 A 씨와 단둘이 남으면 돌변했다. 이것은 우발적인 분노 조절 실패가 아니다. 철저히 계산된 폭력이다.

 

누구에게 보여줄지, 누구 앞에서 참을지를 알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행동을 통제할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즉, '화를 참지 못해서' 때린 것이 아니라, '때려도 된다고 판단한 대상'에게만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는 폭력이 충동이 아닌 지배의 수단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A 씨는 30년간 남편에게 '통제해도 되는 존재'로 취급당해왔다.


이혼은 패배가 아니다

 

손수호 변호사의 말처럼 이혼이 모든 문제의 해답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반복되는 폭력 앞에서 '참음'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참는 동안 폭력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가 감내한다는 것을 학습한 가해자는 더 대담해진다. 

A 씨의 경우가 정확히 그랬다. 시부모가 돌아가시자 폭력은 더 심해졌다.

 

이혼을 망설이는 피해자들에게 주변은 흔히 말한다. 

"애들은 어떡하려고." 그러나 묻고 싶다. 폭력이 난무하는 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괜찮은가. 

A 씨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실체를 뒤늦게 알고 충격을 받았다. 폭력을 감춘다고 아이들이 그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폭력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

 

A 씨의 사연은 특별한 불행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A 씨가 전국 어딘가의 가정에서 혼자 버티고 있다. 

문제는 개인의 인내심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신고를 망설이지 않도록 실질적인 보호 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신고 후 보복이 두렵지 않도록 피해자 분리와 지원이 즉각 이루어져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지금보다 훨씬 무거워야 하며, '합의'로 사건이 흐지부지 마무리되는 관행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인식을 바꿔야 한다. 옆집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닫지 말고, '부부 싸움'이라는 말로 폭력을 희석시키지 말아야 한다. 

침묵하는 피해자를 탓하기 전에, 그 침묵을 강요한 사회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30년의 침묵 끝에 A 씨는 이제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그 목소리에 제대로 응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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