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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 나라가 만만한가 — 인플루언서의 조회수 사냥, 이제는 끝내야 한다

  • 이현 기자
  • 입력 2026.09.15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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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지하철 4호선 명동역. 외국인 관광객 3명이 교통카드 2장으로 부정 승차를 시도하다 적발됐다. 

명백한 무임승차, 그것도 여러 명이 공모한 부정행위였다. 

 

그런데 역무원이 영어로 규정까지 짚어가며 정중히 안내하자 이들이 보인 태도는 뻔뻔함 그 자체였다. "카드를 찍었으니 문제없다"는 억지, "돈을 환불해 달라"는 몰상식한 요구에 이어, 이들은 급기야 영어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잘못을 지적받자 돌아온 것은 사과가 아니라 폭언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들은 역무원의 얼굴을 촬영해도 되는지 단 한마디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공무 수행 중인 노동자를 상대로 무단 촬영을 감행한 뒤, 그날 저녁 모자이크 하나 없이 얼굴이 노출된 영상을 22만 팔로워에게 그대로 유포했다. 

초상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더 악질적인 것은 그다음이다. 

이들은 사실과 정반대의 자막을 붙였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한국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선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부정 승차를 지적당하고 규정을 안내받은 것을 "이유 없는 벌금 부과"로 둔갑시키고, 여기에 인종차별 프레임까지 덧씌워 해외 네티즌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실제로는 자신들이 규정을 어기고 욕설을 내뱉은 가해자였음에도, 인종차별이라는 가장 무겁고 예민한 낙인을 아무 근거 없이 상대에게 씌워 국제적인 비난 여론을 조직적으로 유도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왜곡이 아니라 명백한 선동이자 2차 가해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반박할 무대도 없는 현장 노동자를 향해, 팔로워 수라는 권력을 이용해 거짓 프레임을 씌운 것은 명예훼손을 넘어선 인격 살해에 가깝다.

 

이뿐만이 아니다. 팔로워 125만 명을 거느린 독일 인플루언서 슈트라이히브루더는 승객들이 통로까지 빼곡히 서 있는 지하철 객실 안에서 스피커를 틀고 디제잉과 춤판을 벌였다. 

홍대 거리에서는 아예 차도까지 넘나들며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촬영에 동의한 적 없는 시민들의 얼굴이 그대로 영상에 담겼다. 시민의 안전이나 초상권 따위는 애초에 안중에도 없었다. 

 

그에게 서울은 도시가 아니라 조회수를 채굴하는 광산이었을 뿐이다.

 

이 두 사건을 관통하는 것은 하나다. 


욕설로 위협하고, 동의 없이 촬영하고, 거짓 프레임으로 선동하는 뻔뻔함이다. 그리고 그 뻔뻔함이 통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한국이 만만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 정확히 짚자

 

첫째, 이것은 실수가 아니라 왜곡이고 가해다. 

부정 승차를 한 쪽이 잘못을 했음에도, 팔로워 수를 무기로 삼아 서사를 통째로 뒤집었다. 

특히 아무 근거 없이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한 것은, 실제 인종차별 피해자들의 목소리마저 희석시키는 이중의 해악이다. 언어 장벽 앞에서 목소리조차 내기 힘든 현장 노동자를 향한 이 왜곡은 단순 매너 없음이 아니라 명백한 명예훼손이자 인격 살해다.

 

둘째, 공공장소를 사유화하는 오만이다. 

지하철은 놀이터가 아니다. 촬영에 동의한 적 없는 시민들의 얼굴이 초상권 침해라는 인식조차 없이 영상에 그대로 박제됐다. 

명동역 사건의 역무원 역시 자신의 얼굴이 전 세계에 유포될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무단으로 촬영당했다. 이것은 촌스러운 무례가 아니라 명백한 권리 침해다.

 

셋째, 이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회수 경제가 조장한 구조적 범죄에 가깝다. 

슈트라이히브루더가 바르셀로나 등 세계 각지에서 같은 짓을 반복해왔다는 사실은, 이 행태가 '자극적일수록 돈이 되는' 플랫폼 생태계가 부추긴 결과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콘텐츠 사냥꾼들에게 한국은 손쉬운 먹잇감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넷째, 대응은 무기력했고 뒷북이었다. 

노조가 항의 메시지를 보내자 돌아온 것은 차단이었다. 결국 고소장을 제출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사이 역무원은 이미 정신적 충격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국내 언론이 대대적으로 다루고 나서야 뒤늦게 나온 '해명'조차 인종차별 선동을 사과하기는커녕 욕설 사실 자체를 부인하며 기존의 왜곡된 주장을 그대로 반복했다. 

이런 뻔뻔함이 통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대응이 너무 물러 터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역무원 개인이 감당할 문제가 아니다. 

서울교통공사와 관계 기관은 부정 승차, 폭언, 무단 촬영 및 허위·왜곡 영상 유포에 대해 즉각적인 법적 대응 매뉴얼을 만들고, 유사 사건 발생 시 기관 명의로 신속하게 사실관계를 다국어로 공표해야 한다. 

 

특히 근거 없는 인종차별 프레임에 대해서는 명확하고 단호하게 반박하는 공식 입장을 내야 한다. 

침묵은 곧 그 거짓을 사실로 굳히는 결과를 낳는다. 해외 플랫폼을 상대로 한 콘텐츠 신고·정정 요청 전담 창구도 지금 당장 마련해야 한다. 

뒤늦은 개인 항의 메시지 따위로는 아무것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이미 증명됐다.

 

공공장소에서의 폭언·무단 촬영, 상업적 퍼포먼스, 소음·안전 위협 행위에 대해서는 모호한 규정 뒤에 숨지 말고 명확한 기준과 강력한 제재를 세워야 한다. 

공무원을 상대로 한 욕설과 협박은 공무집행방해에 준하는 수준으로 다뤄야 하고, 동의 없는 얼굴 노출 영상은 초상권 침해로 신속히 제재해야 한다. 

 

차도를 넘나들며 춤을 추는 행위는 낭만이 아니라 도로교통법 위반이자 안전 범죄다. 

벌금 몇 푼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강제 출국과 입국 제한까지 검토해야 한다.

 

관광객 유치에 목매어 이런 행태를 '문화적 다양성'이나 '해프닝'으로 눙치고 넘어가는 순간, 다음 표적은 또 다른 현장 노동자가 될 것이다. 

 

특히 근거 없는 인종차별 선동은 진짜 인종차별과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마저 갉아먹는다는 점에서 반드시 단호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국이 친절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만만한 나라라는 낙인으로 뒤바뀌기 전에, 지금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 

 

관용에는 원칙이 있어야 하고, 원칙에는 대가가 따라야 한다. 그것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회는 계속해서 조회수 사냥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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