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카메라 피해자가 가해자를 때렸다. 벌금 30만원이 나왔다.
집에 침입한 도둑을 제압했다. 실형이 내려졌다. 법원은 두 경우 모두 정당방위가 아니라고 했다.
피해자들이 묻는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했는가.
2024년 12월 새벽 5시 40분, 창원의 한 빌딩 여자 화장실. 40대 여성 A씨는 자신이 소변을 보는 모습을 몰래 촬영하는 20대 남성 B씨를 현장에서 붙잡았다.
B씨는 이미 2023년 12월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집행유예 기간 중에 또다시 불법 촬영을 저지른 것이다.
A씨는 B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수차례 때렸다. 법원은 이를 정당방위로 보지 않았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막는 것을 넘어 얼굴 부위를 15~17회 폭행한 것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라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같은 논리는 '도둑 뇌사 사건'에도 적용됐다. 새벽 3시, 집에 귀가하던 20대 청년이 거실에서 서랍장을 뒤지는 침입자를 발견했다. 공황 상태에서 폭행을 가했고 침입자는 사망했다.
대법원은 정당방위도, 과잉방위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도주하려는 상황이었으므로 위험이 종료됐다"는 것이 핵심 논거였다.
두 판결 모두 법리적으로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무언가 깊이 불편하다. 그 불편함을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 형법 제21조는 정당방위를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로 규정한다. 문제는 '상당성'이다. 법원은 이 상당성을 매우 좁게 해석해왔다.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60여 년 동안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는 고작 14건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숫자 하나가 한국 정당방위 법리의 현실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법원의 논리를 따르면 피해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실상 다음과 같다.
침해가 발생하는 순간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라. 위협이 종료됐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라. 위협이 지속 중이라면 최소한의 수단만 사용하라.
그리고 그 판단이 틀리면 처벌받을 준비를 하라.
그러나 화장실에서 자신이 촬영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순간의 공포와 분노, 새벽에 자기 집 거실에서 낯선 침입자와 마주친 순간의 공황을 법정의 서늘한 논리로 재단할 수 있는가?
인간은 극도의 공포 상황에서 '상당한 수준의 방위'를 계산하며 행동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가해자는 보호받고, 피해자는 기소된다
이번 창원 사건에서 더 불편한 지점은 따로 있다. B씨는 집행유예 기간 중 재범을 저질렀다. 그러면서도 A씨를 상대로 폭행 피해를 주장했고, 법원은 그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다.
물론 법 앞에서는 가해자도 신체의 안전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그것이 법치주의의 원칙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가해자를 신고하고 경찰이 올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요구인지 되물어야 한다.
새벽 5시 40분 화장실이라는 밀폐 공간에서, 자신의 가장 취약한 순간을 촬영당한 여성에게...
도둑 뇌사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법원은 "도주하려는 침입자에 대한 위협은 종료됐다"고 봤다.
그러나 새벽 3시 어둠 속에서 집에 들어온 20대 청년에게, 침입자가 도주하는지 공격을 준비하는지를 순간적으로 판별하라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기준이다.
정당방위, 왜 이렇게 좁게 인정하는가
한국 법원이 정당방위를 극도로 좁게 인정하는 데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자력구제를 허용할 경우 사적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우려, 과잉 보복을 방지해야 한다는 논리가 축적되어 왔다. 그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는 자신의 집에 침입한 자에 대한 방위 행위에 훨씬 넓은 정당방위를 인정한다.
특히 미국 다수 주(州)의 '성채 원칙(Castle Doctrine)'은 자신의 집 안에서는 도주 의무가 없으며 침입자에 대해 상당한 물리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공간적·심리적 안전지대인 집에서조차 피해자가 계산된 방어만 해야 한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사회적 합의의 반영이다.
한국도 변화의 조짐이 없지는 않다. 2023년 대법원은 정당방위 판단 기준을 다소 완화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실무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아직 미미하다.
법이 피해자의 편에 서야 한다
법은 가해자의 권리도 지켜야 하지만, 동시에 피해자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도 보장해야 한다. 지금의 정당방위 법리는 그 균형을 잃고 있다.
몰래카메라 피해 여성에게 "조금 덜 때렸어야 했다"고, 집에 침입한 도둑을 제압한 청년에게 "조금 더 일찍 멈췄어야 했다"고 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법의 언어인가?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더 냉정해야 무죄가 된다는 법 현실.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준이 과연 상식적인지, 이제는 사회 전체가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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