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전국 법원 여러 곳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협박 이메일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솔직히 처음 든 생각은 "또 장난이겠지"였다.
최근 몇 년 사이 학교, 공공기관, 다중이용시설을 겨냥한 이런 종류의 허위 협박이 워낙 잦아지다 보니, 나 역시 무뎌진 감각으로 뉴스를 훑어 내려간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기사를 하나씩 읽어 내려가면서, 이번 사건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춘천지법에는 아세톤을 이용한 사제폭탄을 설치했다는 내용의 메일이, 창원지법에는 구체적인 폭발 예정 시간까지 명시된 협박이 도착했다.
청주지법에서는 결국 직원과 민원인 수백 명이 건물 밖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한 곳도 아니고 전국의 법원이 같은 날, 비슷한 수법으로 동시에 표적이 됐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개인의 우발적인 장난이라기엔 너무 정교하고, 조직적이라기엔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애매한 지점에 이 사건이 놓여 있다.
발신자는 일본의 한 아이돌 그룹 멤버를 사칭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씁쓸한 기시감을 느꼈다.
누군가의 이름이나 신원을 빌려 책임을 피해가려는 수법,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사회 시스템을 마음껏 흔들어 보려는 태도. 이런 협박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매번 '가짜였다'는 결과에 안도하며 넘어가지만, 그 안도감이야말로 다음 협박을 부추기는 토양이 되는 건 아닐까.
취재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종종 "요즘 세상이 왜 이렇게 됐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나는 이런 질문에 명쾌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확실한 건, 폭발물이 실제로 없었다는 사실이 이 사건을 가볍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법원이라는 공간은 국민의 마지막 신뢰가 머무는 곳이다.
그 공간이 손쉽게 마비될 수 있다는 걸 누군가 실험해 본 것이라면, 우리는 이걸 단순한 해프닝으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경찰은 현재 발신 경로를 추적 중이라고 한다.
부디 이번만큼은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 섞인 예측이 빗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매번 임시방편으로 대피와 수색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을 겨냥한 협박에 대응하는 좀 더 근본적인 체계를 갖췄으면 한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도 묻게 된다.
"또 장난이겠지"라는 무뎌진 반응이야말로, 이런 협박이 계속되도록 만드는 우리 사회의 공기 아니었을까.
이번 사건이 조용히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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