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칼럼]전선줄로 목을 조른 자들이 가족을 말하지 마라

  • 이현 기자
  • 입력 2026.05.20 12:05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 서해타임즈 이현 기자

국화.jpg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뇌출혈과 고관절 골절. 몸이 무너져 내린 한 여인이 있었다.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혼자서는 밥 한 끼 먹기도 버거운 처지가 됐다. 평생 남편 곁에서, 자식 곁에서 살아온 여자가 이제는 누군가의 손을 빌려야만 하루를 버틸 수 있게 됐다. 


그 '누군가'는 당연히 남편이어야 했고, 아들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이 선택한 것은 간병이 아니었다. 살인이었다.

 

수면제 두 알. 목을 조르는 손. 그래도 숨이 붙어 있자 멀티탭 전선줄로 다시 조른 손. 이것이 가족의 손이었다. 수십 년을 함께 잠든 남편의 손이었고,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 여자가 온몸으로 밀어낸 아들의 손이었다. 그 손이 그녀의 목을 눌렀다. 요양원 비용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생활비가 걱정된다는 이유로.

 

얼마짜리 목숨이었을까. 한 달 요양원 비용보다 싼 목숨이었을까.

이들은 끝까지 피해자가 스스로 원한 죽음이었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뻔뻔한 변명이다. 인지능력이 저하된 노모에게, 수면제를 먹여 의식이 혼미해진 상태의 아내에게 '당신 죽기를 원합니까'라고 물은들 그것이 자유로운 동의가 될 수 있는가. 대법원은 명확히 말했다. 그것은 진지한 결단이 아니라고. 당연한 판단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동의'가 아니라 절차였을 뿐이다. 살인을 위한 요식행위.

 

우리 사회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가.

노인을 모시는 일이 '부담'이 된 지 오래다. 요양원 비용은 치솟고, 간병은 삶을 통째로 갉아먹는다. 국가는 이 짐을 온전히 가족에게 떠넘겨왔다. 그러면서 '효도'와 '가족의 사랑'을 운운해왔다. 이 사건은 그 구조적 방치가 낳은 극단적 결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살인이 이해될 수는 없다. 절대로.

가난해도 부모를 죽이지 않는다. 고단해도 아내를 죽이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의 최소한이다. 그 최소한을 넘어선 자들에게 사회적 맥락은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징역 3년. 징역 7년.

한 사람의 목숨값치고는 참혹하리만큼 가볍게 느껴지는 숫자다. 그 여자는 전선줄에 목이 졸려 죽었는데, 그녀를 죽인 자들은 살아서 출소한다. 법이 정한 절차이니 왈가왈부하기 어렵다 해도, 이 숫자 앞에서 씁쓸함을 지우기가 어렵다.

당신 곁의 늙고 병든 사람을 보라. 그가 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해도, 그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에는 인간과 짐승의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문명이다. 그것이 가족이다.

 

전선줄로 목을 조르는 것은 가족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살인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을 빌린, 가장 비겁한 종류의 살인이다.

ⓒ 서해타임즈 & w-time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전체댓글 0

추천뉴스

  • 당진소방서, 대형 산업시설에 ‘신속대응 지점번호’ 도입 추진
  • 지역과 일상 연결…전국 230곳서 '공공디자인 페스티벌'
  • 반려견 맡긴 20분간 13차례 내던진 지인…척추 손상·다리 마비
  • 당진시, 반려식물 진단부터 관리까지 맞춤형 클리닉
  • 당진시, 축산물 위생 분야 합동단속 실시
  • 천안시민한마음체육대회 24일 개최…31개 읍면동 7000여 명 ‘열전’
  • 아산시,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보증료 최대 40만 원 지원
  • 예산군, 불용 임대농기계 30대 관내 농업인에 매각
  • 예산군, ‘예가정성’ 재구매 의사 93.4%… 브랜드 인지도 더 높인다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칼럼]전선줄로 목을 조른 자들이 가족을 말하지 마라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