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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배달·택배 노동자를 향한 '갑질 공화국'…우리는 언제까지 이들을 소모품 취급할 것인가

  • 이현 기자
  • 입력 2026.02.2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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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타임즈 이현 기자

 

오늘도 누군가는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기도 전에 인상을 찌푸린다. 배달이 5분 늦었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다는 이유로, 혹은 복도에 잠시 짐을 내려놓았다는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 배달·택배 노동자를 향한 '갑질'은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다.

 

끝나지 않는 갑질의 민낯

 

실제 사례들은 차갑고도 적나라하다.

 

2023년, 한 아파트 입주민이 택배 기사에게 "너 같은 사람은 엘리베이터 타지 말고 계단으로 다녀라"고 소리를 지르는 영상이 온라인에 확산되며 공분을 샀다. 해당 입주민은 택배 기사가 엘리베이터에 손수레를 가지고 탔다는 이유로 폭언을 퍼부었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노동자에게 계단을 강요하는 이 장면은, 우리 사회가 이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같은 해 서울의 한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는 관리사무소 명의로 "택배 기사는 지하 주차장 및 엘리베이터 이용을 금지한다"는 공문이 게시됐다. 주민 민원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정작 그 배달 물품을 주문한 것은 해당 주민들 자신이었다. 비판이 빗발치자 공문은 조용히 철거됐지만, 씁쓸한 뒷맛은 지워지지 않았다.

 

음식 배달 플랫폼 이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후 배달 라이더를 향한 갑질은 더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음식을 집어 던지거나, 2~3분 지연을 이유로 별점 1점과 함께 악의적 리뷰를 남겨 생계를 위협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한 라이더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비 오는 날 30분 이상 기다리게 해 놓고, 제가 문을 두 번 두드렸다는 이유로 '무례하다'며 환불 요청을 했다"는 사연을 올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2024년에는 한 아파트 주민이 배달 기사에게 "우리 단지에 오려면 깨끗하게 입고 와라"는 말을 남긴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땀과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하루 수십 건의 배달을 소화하는 이들에게, 복장을 지적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욕이었다.

 

편리함은 누리고, 노동은 무시하는 이중성

 

이 모든 갑질에는 공통된 심리가 깔려 있다.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다'는 인식이 어느 순간 '돈을 냈으니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변질된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새벽 2시에 치킨을 시킬 수 있는 편리함,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따뜻한 밥을 받아볼 수 있는 일상, 클릭 한 번으로 이튿날 현관 앞에 놓이는 택배 상자.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누군가가 그 시간에 도로 위를 달리고,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고, 날씨와 싸우며 몸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택배 물동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1인당 택배 이용 횟수는 연간 70회를 넘어섰고, 음식 배달 앱 이용자 수는 수천만 명에 달한다. 

이 '세계 최고의 편의'를 떠받치는 이들이 바로 배달·택배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편의를 누리면서 정작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플랫폼 구조가 갑질을 부추긴다

 

문제는 개인의 몰상식만이 아니다. 구조 자체가 갑질을 허용하고 있다.

배달 플랫폼의 별점 시스템은 그 대표적인 예다. 

배달 지연의 원인이 음식점 조리 시간이든, 교통 상황이든 관계없이 모든 불만이 라이더를 향한 낮은 별점으로 귀결된다. 

별점이 낮아지면 수익이 줄고, 심하면 플랫폼 이용 자체가 제한된다. 

사실상 고객의 감정이 노동자의 생계를 쥐고 있는 셈이다. 이 구조에서 라이더는 항의는커녕 '죄송합니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택배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수취인의 민원 한 통이면 경위서를 써야 하고, 고객 응대 점수가 낮으면 배송 구역을 빼앗길 수도 있다. 이런 구조 안에서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참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배달 노동자도 누군가의 가족이다

 

우리는 종종 잊는다. 늦은 밤 오토바이를 몰고 오는 저 사람이, 무거운 박스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저 사람이,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아들이고, 이웃이라는 사실을.

 

지난 몇 년간 과로와 사고로 목숨을 잃은 택배·배달 노동자의 수는 적지 않다. 그 죽음 앞에서 우리는 잠시 애도했고, 곧 잊었다. 그리고 다시 새벽에 배달 앱을 켠다.

 

최소한의 예의는 대단한 요구가 아니다. 문을 열었을 때 "수고하셨어요" 한마디, 조금 늦었다고 해서 별점 1점으로 보복하지 않는 것,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는 것. 

이것은 배려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위다.

 

 

편리함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 편리함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갑질 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오늘 그 사람에게 사람답게 대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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