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뉴스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산림 내 불법 임산물 채취 금지
    산나물이나 약초, 꽃, 풀, 나무, 나무의 수액 등 산림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생산물을 임산물이라고 하며, 임산물은 주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캐면 안 된다. 모든 산은 국유림 또는 사유림에 해당하여 임산물 채취 시 주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만약 동의 없이 무단으로 임산물을 채취한다면 임산물 불법 채취 행위에 해당한다. 산림 내 불법행위 주요 단속 대상으로는 ▲ 산림소유자의 동의 없이 산나물·산약초를 채취하는 행위 ▲경작지 조성을 위하여 허가 없이 산림을 전용하는 행위 ▲산림 보호구역 내 금지행위 및 희귀식물 서식지 무단 입산 등이 있다. 산주 동의 없이 임산물을 훔치거나 가져갈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이 부과되며 미수범도 처벌 대상이다. 임산물 채취를 위해 입산통제구역에 들어가기만 해도 1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며, 보호수 또는 산림보호구역 내 산물을 훔치거나 가져갈 경우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적발된 임산물은 가격, 종류 상관없이 모두 압수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편, 오늘 5월 31일까지 봄철 임산물 생산 철을 산림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산림 내 불법행위 특별단속을 시행한다.
    • 오피니언
    • 컬럼
    2023-04-19
  • 성경인물 시리즈 《도마》
    성경인물 시리즈 예수님의 12제자 중 《도마》 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시던 밤, 제자들은 유대인들의 박해가 예수님을 따르던 자신들에게도 미칠까 염려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부활하신다고 누누이 말씀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상기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회의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굳게 잠겨있는 문을 그대로 통과하여 그들에게 찾아오셔서 놀라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상흔이 있는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장 19절부터 21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던 그 모습 그대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찾아오셨고 그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심을 부정할 수 없는 부활의 진실성을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손바닥과 옆구리의 상처 자국을 눈으로 확인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는 확신이 생겼고 절망과 좌절로 낙심해 있던 제자들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의 주인공 도마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불참의 이유는 차치하고 그 자리에 없던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기쁨과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는 반전을 몰랐던 것입니다. 부활의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의 능력을 친히 보여주셨고 당시의 고난이 부활의 과정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임을 제자들은 실감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시 전도 생활을 시작했고 도마를 만나 기쁨으로 그들에게 있었던 사건들을 얘기해 주면서 특별히 예수님께서 친히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심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같이 주님을 보지 못한 도마에게도 감격과 기쁨을 나누어 주기 위해 자신들이 경험한 일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제자들의 말을 구체적인 증거 없이 믿지 못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한 듯 합니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한복음 20장 24절부터 25절 도마는 모든 일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실증적인 사람이었기에 그가 부활의 주님을 믿고 온전하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그의 인생에 엄청난 반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도마의 성격에서 짐작하듯이 그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서 제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에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디디무스(δίδυμος/Didymus, '디두모') 그리스어로 쌍둥이라는 의미입니다. 공관복음에서는 빌립과 마찬가지로 열두제자의 명단에만 기록이 되어 있지만 요한복음의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 두 가지의 사건에서 그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1절 이하의 내용에서 요단강 저편 베다니의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이 소식에 유대로 올라가실 결심을 하신 예수님께 제자들은 예수님의 설교에 감동을 받아 사회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음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또한 유대교 유력인사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태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죽은 나사로에게 가는 것을 반대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감수하고서 라도 유대로 올라가자고 하시는 예수님의 확고한 신념에 도마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다른 제자들을 독려했습니다.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요한복음 11장 16절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요한복음 11장 1절부터 16절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했을 정도로 도마는 예수님과 고난을 받으려는 기백과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제자입니다. 예수님을 존경하고 자신의 스승으로 모시면서 일당백의 결사적인 자세와 충성스러운 모습으로 정직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했고 다른 제자들보다 앞장서는 용기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향하는 길 앞에서 제자들과 작별인사를 하시고 하늘의 아버지께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걱정과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제자들과 모든 믿는 사람들을 위해 하늘을 처소를 예배해 두겠다는 말씀으로 위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면 다시 와서 그들을 영접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내가 가는 곳에 이르는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요한복음 14장 1절부터 4절 이때 도마가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요한복음 14장 5절 도마가 예수님께 하는 질문은 솔직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를 설명하면, 저 세상이나 그 처소로 가는 길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라는 것으로 영적인 신비에 대한 것을 다 아는 것 인냥 잘난 체 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이 다른 제자들보다 좋다고 자랑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그는 없는 것은 없다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할 수 있는 그렇지만 자신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간절히 알고 싶어 하는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의 질문에 명확한 한 말씀으로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도 진리가 되는 말씀을 하시게 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부터 7절 이런 성격의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다른 제자들의 증언을 믿지 못하는 것은, 그의 냉소적인 불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진실을 목격하고, 예수님의 상처를 자신의 눈으로 확신함으로써,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따르고자 했던 스승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믿고 싶은 간절한 믿음에서 나오는 의심이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현이 불안한 자신의 심정에서 허망한 사건이 아닌 사실이기를 바라는 죽음을 각오한 심정에서의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나타내 보이실 때, 그날도 “안식 후 첫날” 일요일 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이 날에 나타나셨습니다. 맨 처음 막달라 마리아에게도,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에게도, 열명의 제자들에게도, 베드로에게도, 모두 이날에 나타나 보이셨고, 열 제자들에게 나타내신 후 여드레를 지난 이 날에 도마도 있을 때에 특별히 그를 위해서 다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도마에게 다시 나타나신 것은 특별히 열정적인 도마의 확신을 위한 의심에 종지부를 찍어주시고 싶으셨던 마음이셨을 것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보지 못하고 기쁨이 충만해 있는 다른 제자들에게 들었던 부활의 소식은 자신을 의기소침하게 만들었을 것이며 매우 우울하고 도태된 기분으로 지냈을 것입니다. 스승님 이셨던 예수님을 만나고 싶고 믿고 싶어 방황하며 의심하던 도마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시 찾아오셔서 도마의 의심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네가 그렇게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한복음 20장 27절 예수님께서는 언제까지 불신의 벽에 부딪쳐 할 일도 못하는 도마에게 그의 의심과 호기심을 최대한 만족시켜주셨습니다. 도마에게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명백하게 증거해 주시고 손과 옆구리의 상흔은 보여주시고 도마로 하여금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하게 만들었습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한복음 20장 28절 이러한 도마의 고백은 기독교 내에서 예수님을 설명하는 가장 완벽한 신앙고백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께 육성으로 직접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유일한 제자가 도마이며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했던 베드로 보다 더 높은 평가를 합니다. 거짓과 형식에 철저했던 유대인들에게는 “요나의 표적 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고”고 거절하신 예수님께서 진실하고 정직한 심정에 거룩한 의심을 품었던 도마에게는 위대한 진리를 알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신앙고백을 했던 도마를 향해 진리의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20장 29절 어거스틴(Sanctus Aurelius Augustinus, 354년 11월 13일 ~ 430년 8월 28일)에 의하면 ‘도마가 의심했기 때문에 후대의 우리는 의심 없이 믿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즉 도마가 의심함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내셨고, 그처럼 의심하며 믿기에 느리고 더디었던 제자가 된 것을 보고 우리는 유력한 증거를 얻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도마의 순교는 서기 52년 인도에서도 남쪽 끝 부분인 케랄라 주에까지 가서 선교하다가 순교했다는 전승이 있으며 인도의 첸나이에는 '도마의 언덕'이라고 하여 첸나이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도마가 순교한 장소인 동시에 그의 무덤이 안장된 성 토마스(카톨릭 명) 대성당이 있습니다.
    • 오피니언
    • 연재
    2023-04-18
  • 국민 안전의 날
    매년 4월 16일은 국민 안전의 날로,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안전의 중요성을 되새기기 위하여 2015년에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다. 국민의 안전 국민의 안전의식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매년 4월 16일을 국민 안전의 날로 정하여 필요한 행사 등을 하게 된다. 또 국가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국민의 안전의식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안전 점검의 날과 방재의 날을 정하여 필요한 행사 등을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국민 안전의 날’) 국민 안전의 날을 맞이해 알아본 생활 속 안전 수칙은 다음과 같다. 가정 내에서는 ▲문어발식 콘센트 사용하지 않기 ▲화장실 바닥에 미끄럼 방지 패드 설치하기 ▲외출 시 가스 밸브 잠그기 ▲창문이나 베란다에 보호대, 난간 설치하기 등으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교통사고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안전벨트 매기 ▲신호 지키기 ▲과속하지 않기 ▲보복 운전이나 난폭운전 하지 않기 ▲도로에서 머물지 않기 ▲불법주정차 하지 않기 등이 있다. 봄철 황사와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외출 되도록 자제하기 ▲외출 시 보건용 마스크(KF) 착용하기 ▲외출 후 샤워로 몸에 붙은 먼지 제거하기를 지켜 호흡기, 심혈관계 질환 등을 예방할 수 있다. 여름철 물놀이 시에는 ▲준비운동 하기 ▲식사 및 음주 직후 물놀이하지 않기 ▲중간마다 휴식 취하기 ▲구명조끼 착용하기 등을 지켜야 한다. 식중독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흐르는 물에 비누로 30초 이상 손 씻기 ▲충분히 씻어 먹기 ▲충분히 익혀 먹기 ▲음식물별 보관온도 지키기 등이 있다.
    • 오피니언
    • 컬럼
    2023-04-17
  • 성경인물 시리즈 《요한》
    성경인물 시리즈 예수님의 12제자 중 《요한》 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가장 연소자로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 라고 표현하며 요한복음과 요한1서, 요한2서, 요한3서와 요한계시록의 저자입니다. 이를 증거할 성경구절은 요한복음서를 통한 요한 자신이 예수님의 활동과 영광의 목격자라는 것(요1:14, 요19:35, 요21:24)과 복음서 내용에서도 목격자로서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서 전체를 통한 자신을 거명할 때에도 요한이라는 이름 대신 “그의 사랑하시는 자” 혹은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 등의 명칭을 사용함으로 요한복음서의 저자가 자신임을 알리고 있습니다(요13:23, 요19:26, 요20:2-10 요21:7).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말에 메시아를 만난 기쁨을 표현했던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은 “안드레” 라고 밝히면서 다른 한사람은 “다른 제자”라고 표현했던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드레와 함께 자신을 쫓아오는 요한에게 동일한 질문으로“무엇을 구하느냐?”라고 물으시면서 안드레의 “랍비여 어디계시오니까?”라는 대답에 그저 생각에 잠겨 있던 요한에게 “와보라” 라는 두 번째 말씀으로 요한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의 실현 가능함을 밝혀주시겠다 확언의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은 안드레와 같이 세례요한의 제자로서 그를 동조하며 자신과 세상의 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던 사람이었으며 그 죄를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대를 품고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 시켜주실 구속자를 기다리던 자신의 신념이나 신앙에는 결단력이 있지만 겸손하고 과묵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유대교적 삶의 의문이 많았던 요한에게 “와보라” 라는 예수님 말씀은 그의 스승 세례요한의 “하나님의 어린양” 이라고 칭하신 분을 따르기에 충분한 조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에게는 예수님께서 별명으로 지어주신 “보아너게(우뢰의 아들)”라고 불리울 만큼 다혈질적인 성격도 있었습니다. 그의 다혈질적임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은 사람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는 것을 금하게 하려하는 배타적인 성격이나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에게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쫓아내려 저희를 멸하게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라는 말로 저주를 하는 것을 책망하며 내리신 별명이었습니다. 그의 성격은 후에 이어질 사건들로 인해서 깨달음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인내를 요하는 복음서와 계시록을 비롯한 예수님을 증거 하는 서신을 기록하는 끈기 있는 성격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목회를 하던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본 받아 “사랑”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요한서신을 기록하게 되었던 것이며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자’라는 말을 쉬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요한의 성격에서 “와보라”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가 평소에 갈망하던 무엇인가 볼 수 없는 것을 보려고, 찾을 수 없는 것을 찾으며, 들을 수 없는 것을 들으려고 추구하며, 만져볼 수 없는 것을 만져보려고 찾는 그의 내적 요구와 소원들을 성취 할 수 있는 기회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예수님을 따라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르침에 집중하고 깊은 성찰을 통해서 그의 기록서에 그날의 기억들을 남겨놓았던 것입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한1 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요한은 세베대와 살로매의 아들이며 그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 바다의 어부였습니다. 당시 삶은 비교적 부유한 선주의 집안에서 자라온 것으로 추정이 되는데 그는 자신의 어선을 소유하고 있었고, 직원들을 고용하여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그의 어머니 살로매는 아들의 스승이신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며 봉사했던 것으로 보아 중산층 이상의 생활환경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 중 부한 형편에 속하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으로 그의 어머니 살로매는 예수님께 메시아의 왕국이 왔을 때 요한과 야고보에게 좋은 위치의 권세와 자리를 청탁하는 것으로도 증명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안드레와 베드로 형제보다 부유했다는 증거는 복음서 말미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거주하게 했다는 것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가운데 마지막 사역을 하실 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안위를 부탁하심에 요한은 자신의 집으로 모시고 갔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19:25-27 또한 요한이 당시의 권력과 부유층이라고 할 수 있는 제사장과도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그의 신분이 평민 이상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요18:15 그런 그에게 갈릴리에서 온 촌스러운 청년모습의 예수님은 요한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바칠 것을 명하시고 그에게 인간적인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차원의 사업을 하시자고 말씀하셨고 요한은 즉시 그 말씀에 순종하여 따르게 됩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막1:20 이 부분에서 요한의 믿음과 성격이 잘 드러나고 있는데, 마치 아브람에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과 유사한 것으로 인간의 입장에 보면 경제적인 것과 자신의 삶의 정도 그리고 부모를 떠나야 한다는 고통이었을 것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초석이었습니다. 요한에게 있어서 이것은 영원한 것을 받기 위한 희생이었고 영적인 삶을 위해 키와 불로 태워질 쭉정이를 거르는 결단이었습니다. 가장 어린 나이에 다른 제자들 보다 더 많은 것을 포기한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가장 근거리에서 경험하면서 가르치시는 말씀을 숙고하고 행하시는 기적들을 경험하며 다른 제자들과 함께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악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받아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파하며 병든 자를 고치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누구보다 요한을 잘 아시던 예수님께서는 그의 치밀한 성격과 겸손을 인정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특별히 아끼시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사역마다 요한을 입회시켜 특별한 사건들의 목격자가 되게 하시고 요한에게 믿음을 더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복음을 위해서 특별한 사역에 동참될 것이기에 또한 특별한 희생과 훈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죽은 야이로의 딸을 다시 살리셨을 때에도 높은 산에서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지는 영광스로운 변형이 있을 때에도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실 때에도 요한은 빠트리지 않고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서 요한은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달리다굼” 이라는 단지 말씀 한마디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것을 보면서 말씀이 생명이 된다는 사실과 그 생명이 육신이 되셨다는 사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 될 수 있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또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하신 예수님을 경험한 요한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죄에서 자유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며, 이런 모든 것이 피와 땀을 흘리는 기도의 과정에서 일어 날 수 있는 방법을 깨닫고 실천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제자들 보다 많은 것을 보았고 느꼈고 실천했을 것입니다. 그가 기록한 요한복음서에 기록된 독특한 기록들 중에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는 물로 포도주를 변하게 하신 예수님에게서 창조주의 모습을,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삼십 팔년 된 병자를 고치셨을 때에는 은혜와 자애의 하나님의 모습을,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에게는 인류의 죄를 친히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속죄의 예수님의 모습을,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셨을 때에는 만물의 창조주로 하늘에게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떡이 되시는 하나님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자에게 영생을 주는 참된 영혼의 양식, 참된 음료이신 생명의 주심을 깨닫고 영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보았을 것이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사건에서는 죄악의 어두운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이심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중에서 특히 더 중요한 사건으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부르셔서 살리신 사건에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장차 세상 끝 날에 다시 오셔서 믿음 안에서 잠든 자들에게 “무덤에서 나오라”라는 부르심으로 심판의 주인이시며 영생의 주인이신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보아너게’ 라는 극단적이고 우레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가 사랑의 사도를 변하게 된 많은 사건들도 있었을 것이나 짐작하건데 그의 영적인 삶의 기초를 마련한 것은 예수님께서 잡하시기 전날 밤에 베드로와 함께 다락방에서 유월절 준비를 하며 최후의 만찬을 나누며 그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인상 깊게 지켜보면서 사랑에 대한 영감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요13:4-5 요한은 영적인 충만함으로 예수님의 고별 설교를 듣고 그 감동이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많은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가 하루 동안에 경험한 영적인 체험은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나아갔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며 사명을 위해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그 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새벽 체포되어 가시는 주님의 뒤를 따라가서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지켜보며 자신의 스승이 모진 고난을 받으시는 것을 보면 자신의 무능과 좌절을 느꼈을 것이며, 거기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절망과 회한으로 패배자가 된 베드로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은거하게 하는 사건들은 요한에게 있어서 복음을 전하는 방법에 대한 고뇌가 있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피흘리시는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 고통가운데 어머니 마리아의 안위를 걱정하시는 예수님의 부탁으로 자신의 집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새벽에, 요한은 무덤이 비어 있다는 막달라 마리아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베드로와 함께 급히 달려가 텅빈 무덤 속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의 몸에 싸여져 있던 세마포와 머리에 쌌던 수건만 개어져서 놓여 있을 뿐 예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는 것을 목격하고, 예수님께서 생전에 말씀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요20:1-8 요한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두 번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나타나시기를 더디 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갈릴리 바닷가로 고기를 잡으러 가게 됩니다. 고기를 잡지 못하고 돌아오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그물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요한에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 예수님이라고 알리게 되었을 때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바다에 뛰어내리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날 요한과 베드로를 비롯한 어부로 종사하던 제자들은 함께 그물을 올려 153마리의 물고기를 수확하고 예수님과 함께 조반을 먹은 후에 베드로에게 예수님의 양을 먹일 사명을 맡기셨고 베드로의 순교에 대한 예고도 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의 질문은 요한의 사역에 대한 것이었고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 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질문과 대답으로 인간적인 베드로의 숨겨진 성격도 나오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가장 연장자 베드로와 가장 연소자 요한의 관계에서 어린 동생을 챙기고 싶었던 베드로의 측은지심과 사명이 다름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요한과 베드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목회를 하게 됩니다. 이는 그들의 성격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바다로 뛰어내린 베드로는 그의 열정적인 성격에 맞게 열렬하게 전도생활을 하다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조용히 배에 남아서 그물을 끌어올렸고 가장 연소자 제자로서 조용하게 영적서신 위주의 집필과 오랜 동안 전도와 목회를 하면서 조용하게 자연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의 안위를 맡기시면서 그의 심령을 정화시켜 육적인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의 전환하는 방법을 깨닫게 하시고 영안을 열어 주심으로 요한을 사용하셔서 예수님에 대한 가장 오묘하고 진리의 영적 사실을 설명하도록 복음서를 기록하게 하셨으며 또한 은혜와 영광과 역사의 통치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을 공개하는 계시록을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계 1:1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면서 “예루살렘교회의 기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갈2:9 요한은 마지막을 에베소에서 목회하며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많은 핍박을 견디다가, A.D.81-96 로마의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밧모섬으로 유배를 당했고, 그 후에도 A.D. 98-111트라얀 황제 때까지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사역 이후 초대교회에서 가장 유명했던 목회자이자 교부였던 폴리캅도 그의 직계 제자였으며 그 역시 A.D.155에 순교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3년간 제자로서 가르침을 받고 “공교히 만든 이야기”(벧후1:16) 가 아니라 그가 “친히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여 손으로 만진 바”(요일1:1)를 그의 복음서에 기록했던 것이며 그것을 토대로 요한이 깨달은 깨달음을 그의 서신에 기록했던 것입니다. 요한은 다른 제자들 보다 많은 것을 보았고 깨달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마음과 인격과 품성과 사명을 보다 더 깊이, 보다 더 높이, 가장 많이 이해했던 제자였습니다. 그는 그의 성격대로 더 많은 것을 보기 원했고 만지기 원했고 깨닫기를 원했기에 불가시적인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한의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와는 다르게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행하시고, 활동하신 외면적인 것을 나열하여 기록한데 비해 외면적 사실도 영적인 시각에서 기록하면서 내면적인 사실에 입각한 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복음서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인간으로서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 그리고 생명과 빛이 충만함에 있었던 것입니다. “와보라”고 요한에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보여주셨고 요한은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계1:1-2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14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확신을 가지고 증거 하였고 요한의 깨달음에 예수님께서 계시하시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었고 그에게 있어서 증거의 사명은 최대의 사명이요 영광이며 최대의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와보라” 요한에게 하셨던 권면은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권면으로써 그 말씀 안에는 육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될 것이며, 육신의 귀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게 될 것이며, 불가능한 것을 직접 느낄 것이며, 신령한 하늘의 일을 감지하며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영적인 부르심인 것입니다.
    • 오피니언
    • 연재
    2023-04-14
  • ‘국가지점번호’를 아시나요
    현재 위치가 명확하지 않은 산악·해안 등에서 긴급상황 발생 시 ‘국가지점번호’를 통해 구조요청을 할 수 있다. 국가지점번호란 국토와 해양을 격자형으로 구획한 지점마다 부여한 번호로, 도로명주소가 없는 곳에서 조난 또는 사고를 당했을 때 위치 표시 수단이 된다. 기존에는 조난사고 시 국가지점번호판 설치 위치로 이동해야만 조난자 위치 신고가 가능했지만, 현재는 조난사고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국가지점번호판 설치 위치를 확인하여 신고를 할 수 있다. 국가지점번호는 주소정보누리집(www.juso.go.kr)-국가지점번호를통해 확인 가능하다. 구조요청뿐 아니라 대형 산불, 태풍 등과 같은 재난안전사고 시에도 신속한 출동에 도움을 준다.
    • 오피니언
    • 컬럼
    2023-04-12
  • 봄철 야외활동 시 진드기 조심하세요
    진드기 매개 감염병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진드기에게 물려 발생하는 병으로, 주로 4월부터 11월에 발생한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의 경우 치명률이 높고,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어 감염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야외 농작업뿐만 아니라 등산, 나들이 등 야외활동 시 감염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특히 조심해야 한다. 진드기 매개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야외활동 시 ▲옷 제대로 입기 ▲기피제 뿌리기 ▲풀숲 피하기 ▲털고-씻고-빨래하기 등 예방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야외활동 시 긴팔, 긴 바지, 모자, 장갑, 장화 등을 착용하고 목수건, 토시 등으로 피부 노출을 최소화하고, 기피제를 뿌려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드기는 주로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풀밭, 풀숲에 직접 앉지 말고 비닐이나 돗자리를 사용해야 한다. 야외활동 후에는 에어건으로 진드기를 털어내고, 귀가 즉시 샤워 및 세탁하고 진드기에 물린 상처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진드기에 물리면 4~15일 내에 발열, 두통, 구토, 설사, 식욕부진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의료기관에 방문해야한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은 예방백신과 치료제가 없어 물리지 않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 오피니언
    2023-04-05
  • 성경인물 시리즈 《베드로》
    성경인물 시리즈 예수님의 12제자 중 《베드로》 입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바울과 더불어 인간의 내면과 갈등 그리고 다채로운 인격을 보여주는 인물은 예수님의 12제자 중 가장 애제자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일 것입니다. 특히 복음서의 내용에서 그의 특징과 개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요나 또는 요한의 아들로서 갈릴레아 지방 벳새다 동리 출신입니다(요1:44). 예수님의 12제자 중 안드레와는 형제지간이며 원래 이름은 바요나 시몬(마16:19)이었으나 예수님께서 그에게 반석이라는 뜻의 아람어 케파(כיפא, kefa = 게바(요1:42)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를 소리 나는 대로 고대 그리스어 Κηφας(kephas)로 적고, 낱말 뜻을 고대 그리스어 페트로스(돌, 석石)로 풀이한 것입니다. 그의 직업은 안드레 동생과 함께 세베대의 아들이며 형제였던 야고보와 요한과 같이 어부였으며 아마도 아버지의 대로부터 가업으로써 종사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이미 아내가 있었습니다.(막1:29,31) 그는 제자들 사이에서 연장자였을 것입니다. 당시의 사회는 조혼을 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일찍 결혼한 것으로 짐작이 되며 그에 앞서 그가 제자들 사이에서 항상 지도자로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것을 보면, 당시의 유대인은 젊은 사람을 지도자로 삼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는 역사적 통계로 그는 상당히 연장자였을 것입니다. 그들 형제가 자기의 고기잡이 배를 소유하고 예수님을 제자들과 함께 초대할 수 있을만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추론하면, 그의 삶의 정도는 중류층 이하 정도의 생활 형편이었을 것이며 베드로가 받은 교육의 정도는 사도행전 4장 13절에 ‘학문 없는 범인’이라고 불리우고 있으나, 그렇다고 베드로가 완전한 문맹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증거들이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초등 교육을 회당에서 받았는데, 상당히 보급화 되어 있었던 사실이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있으며 베드로의 후년에 소아시아 교회에 보낸 서신을 보더라고 다소의 교육은 있었을 것을 추정됩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에 기록된 ‘학문 없는 범인’을 재해석하면 ‘신학적 지식이 없는 평신도’ 라든가 ‘고위 학문을 배우지 못한 평민’이라는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편이 정확할 것입니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단 강 건저 저편 베다니였습니다(요 1:28). 베드로는 항상 언행이 다른 제자들 보다 먼저였는데 예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바다 위를 걸어가려던 행동이나 변화산에서 초막 셋을 짓겠다고 제한한 것도 그렇고 예수님의 수난 소식에 주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한 것도 베드로 였습니다.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사장 종의 귀를 칼로 벤 것도, 대제사장의 집 뜰에 재판 광경을 보러 간 것도, 예수님이 부활 후 디베랴 바다에 나타나셨을 때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린 사람도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를 언급하는 일화와 그의 사역에 대한 핵심적인 사건 중 마태복음 4장 20절에서 그는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따르는 순종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12제자 중 제일 먼저 예수님을 그리스도 메시아로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8장 31절 이하에서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드러내 놓으시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께 항변하여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 사탄” 이라는 꾸짖음을 듣기도 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14장 30절 이하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저는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지만 결국 예수님께서 체포되시자 부인하며 도망가 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14장 72절 이하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 일이 떠올라서 울었다는 표현을 증거로 그는 심히 괴로워하며 눈물 속에서 간절히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1장에서는 베드로가 다시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로서 다시금 사명자의 자리로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도행전에서는 베드로가 그 누구보다 거듭난 12명의 제자들 가운데 리더로서 당당히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며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구축과 선교사역을 성령충만함으로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 이하에서는 베드로는 예수님의 복음을 토대로 기적을 행하고 성령 충만한 교회의 지도자로서 예수님을 부인한 다른 사람들을 고발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베드로 전서와 후서에서는 베드로의 권위와 위상을 부각시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서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를 때로는 ‘목자’로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 벧전 5:1-4 ‘예수님의 전통을 목도한 진정한 증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벧후 1:16-18 ‘전통 기독교 신앙의 수호자요 거짓 예언자들의 비판자로’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벧후 2:1 ‘바울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 주는 권위 있는 교계의 원로로’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2)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벧후 3:14-16 그려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흐름 속에서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순종의 모습과 고난당하시는 예수님을 부인하며 내적갈등을 표출하는 모습 그리고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로서 그의 위치가 회복되며 예루살렘 교회 내에서 강성한 리더쉽이 부여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신앙의 길을 걸어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속에 참여하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제공하는 인물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을 옆에서 직접 목격하고 제자의 길을 따르던 베드로는 복음에 대한 역사적 증인이었습니다. 역사적 베드로는 ‘살아서 남아 있는 음성’,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옆에서 직접 목격한 목격자의 생생히 살아있는 기억이라는 입지에서부터 발생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사도행전 10장 42절에서 “증언하게 하셨다.”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생애를 증언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심으로 베드로 역시 스스로 예수님 사역의 목격자로 자격을 부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혹자는 베드로가 기도중이나 이야기 중에 예수님을 회상하며 하는 말과 가르침들을 마가가 듣고 기록했다고 하는 문서를 베드로의 예수 회상록(apomnemoneumata)이라고도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로서 베드로가 목격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구태의연한 부연설명이 없고 사건의 특징들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간결한 핵심만 집어서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마가가 기록한 베드로의 예수 회상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문서로써 당시 수일내로 다시 오실 줄 알았던 예수님의 재림이 늦어지는 상황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가르침의 문서로 활용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기록된 베드로의 예수 회상록을 중심으로 마태와 누가가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기록하는데 활용하여 복음서를 기록함으로써 베드로의 예수증언의 전승들이 이어지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베드로의 예수 회상록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가복음입니다. 참고적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내용의 약 80%가 마가복음의 내용입니다. 즉 마가복음을 토대로 두 복음서가 기록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 각자의 자료인 마태의 M자료와 누가의 L자료를 첨부시켜 각자의 복음서를 완성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없고 마태와 누가복음에만 있는 자료는 독일어 Quelle의 약자 Q자료설 이라고 합니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에게 주신 사명은 ‘사람을 낚는 어부’였습니다(마4:19-19; 막1:16-17).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채 정박한 배에 타서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라고 권면하신 것을 이행한 결과 그물이 찢어질 만큼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회개하며 고백하게 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말라 이제부터 사람을 낚을 것이다.” 라는 말씀으로 그의 사명을 암시해 주십니다. 그 후 베드로는 동업자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눅5:1-11). 공관복음서와는 다르게 요한복음서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서 따르게 된 이유를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데,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전한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는 말을 들은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따르던 중 베드로에게 전한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라고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오면서 게바(베드로)라는 별칭를 부여받으며 사명자가 되었습니다(요1:43-51). 제자로 부름을 받은 베드로는 예수님의 행적들을 목격하며 점차 열두 제자들 중에서 수제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사건을 맞이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6장 13절 이하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고 물으시며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묻게 됩니다. 이 질문에 제자들은 세례요한이라고 대답을 하기도 하고, 엘리야, 더러는 다른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등 여러 가지 표현의 대답을 하게 됩니다. 대답이 마쳐지고 이번에는 다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물음에 시몬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중 수장으로서의 임명으로 베드로라는 별칭과 함께 교회의 반석이 되는 위엄과 천국열쇠를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서 전체에 있어서 베드로는 제자들 중 항상 첫 번째 위치에 있게 되는데 그와 비견할 제자는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일 것입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말씀을 나누시는 천국의 모습으로 변모하실 때 그들만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변모하셨을 당시에도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에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을 추정하면 세명 중에도 가장 신뢰하고 수장으로 인정받는 제자는 베드로였을 것입니다. 파란만장한 베드로의 행적 중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게 되자 낙심한 베드로는 도마와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과 요한 그리고 두 명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다시 디베랴 호수로 고기잡이를 하러 갑니다. 그들에게 밤은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는 허망하고 고독한 밤이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믿고 의지하던 주군의 죽음으로 낙심한 그들에게 다시 호수로 돌아오게 된 낙심 그리고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낙심은 삶을 포기 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났지만 알아보지 못하였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리키신 지점에 그물을 던져 들 수 없을 만큼의 고기를 잡은 후 비로서 예수님이신줄 알았습니다. 그때 잡은 고기가 모나미 볼펜으로 유명한 153마리의 기적, 153마리였습니다.
    • 오피니언
    • 연재
    2023-03-30
  • 성경인물 시리즈 《사도바울Ⅱ》
    사도바울이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예루살렘에 얼마나 머물었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다녔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추정이 가능한 것은 그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했던 행동으로는 아마도 산헤드린 회원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산헤드린이라는 소논문을 담고 있는 탈무드의 자료에 따르면, 대산헤드린은 71명의 현자들로 구성된 법정이었고 종교적 입법기관으로서 '법'은 이곳에서 나와 모든 이스라엘에 공표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왕과 대제사장 임명, 전쟁선포, 예루살렘과 성전의 세력범위 확장 등을 명할 수 있었으며, 사법적으로는 대제사장, 거짓 예언자, 반역죄를 지은 원로, 잘못한 지파를 심판할 수 있었습니다. 대산헤드린은 66~70년 예루살렘에서 사라졌으나 후일 팔레스타인의 다른 지역에서 소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산헤드린의 회원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산헤드린 회원에게 주어진 권한에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에 반하는 모든 세력들을 정죄할 수 있는 투표권이 있었으며 스데반과 논쟁할 때, 그 자리에 사도바울도 있었을 것이며 그를 죽이는 데에도 찬성의 투표를 했을 것입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행6:8~9 전통적이며 율법적인 신앙으로 굳어져 있었고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에게 있어서 스데반을 위시한 그리스도인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말을 하는 자들(행6:11)”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못 박히신 예수님을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는 유대민족을 독립시키고 다윗의 왕처럼 강한 힘으로 오실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였으며, 유대교에 대한 비판은 모세의 권위와 율법을 파괴하는 행위로서 모두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철저한 적개심을 갖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모든 사람들을 근절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가 어려서부터 배우고 익힌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고 도덕적으로는 결함이 없는 사람이었으나, 그리스도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암적인 존재였습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1:13 당시 사도바울의 유대교 신앙은 복음이라는 새로운 그리스도교를 전하고 십자가에 처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추종 세력을 대적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었으며 그런 자신의 행위가 신앙을 지키는 양심에 의하여 마땅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행29:9~11 그의 이런 유대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변론하는 스데반을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일 때 당연한 것을 여겼습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행7:58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행8:1 사도바울의 그리스도교를 믿는 제자들과 개종한 사람들에 대한 핍박은 스데반을 죽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이 선교사로 파송되어 전도하고 있는 주변국의 도시로 파급되었습니다.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행26:11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교가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한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극심한 적개심을 품고 그들을 멸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여 그리스도교를 쫓은 사람을 만나면 남녀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다메섹으로 급하게 떠나게 됩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행9:1-2 시리아의 수도 다메섹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그들 중에는 예수님의 생전에 가르침을 듣고 개종한 사람들도 있었으며, 오순절 날 예루살렘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온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제자들에 의해서 전도되어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스데반의 죽음으로 위축된 개종한 사람들이 핍박을 피하여 그곳으로 옮겨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으로 가득 찬 바울은 다메섹에 가까이 도착하여 자신이 찾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심판할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 바울 앞에서 로마의 핍박을 피해 이주해 온 사람들은 풍전등화와 같이 언제 잡혀서 끌려갈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바울은 살기가 가득한 상황이었고 그 성에 숨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굶주린 늑대 앞에 선 어린양이었습니다. 그때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사울에게 비추었습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9:3 그 빛은 사도요한이 증거한 빛의 근원이 되는 하늘의 빛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었습니다. 그 빛은 사울뿐만 아니라 사울과 함께 했던 일행까지도 알 수 있는 빛이었습니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행26:13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어두움을 몰고 가는 바울에게 찾아오셔서 은혜롭게 빛을 발하시며 그에게 인자하신 말씀으로 거룩한 삶을 위한 사명으로 초대를 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행9:6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바울을 땅에 엎드려 졌고, 예수님의 음성을 깨닫지 못했던, 처음 바울과 동행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다메섹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다메섹에는 바울이 찾아서 죽이고자 했던 사람들 중 아나니아라는 예수님의 제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행9:10-11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행9:10-19 사도바울의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핍박은 소문만으로도 아나니아 역시 알고 있었고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바울이 주님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아야 할 것과 이방인과 당시 지배계층의 사람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는 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그릇이었음을 자상하게 설명하시고 아나니아에게 안수하여 예수님의 계획을 말하게 하시고 성령이 임하는 것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한 후 바울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목적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에게 다메섹으로 오는 길은 종교적 열정과 소속된 인맥으로 인한 가시밭길 이었습니다. 그에게 보여지는 종교적 열정 외에 심경의 변화는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그것을 해야 자신의 삶의 공간과 자리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스데반의 논리정연하고 죽음 앞에서 당당하게 외치는 설교에 놀랐고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의 옷을 지키며 스데반이 죽음 앞에서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기도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는 스데반의 죽음에 의해서 자신의 삶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 왔지만 스스로 벗어 날 수 없는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결단을 내릴 수 없이 흐르는 시간에 자신을 맡겨 두었던 것입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사도바울이라는 기독교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을 부르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바울을 마음을 아셨던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도 바울의 당시 심정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행26:14 이 광경은 사도바울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증거 할 때,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해서 설명한 내용입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동안에 갖고 있는 그의 마음이었으며 이를 아셨던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면서 위로해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이는 스데반 집사로 인해서 변화된 자신이 진정한 하나님을 반역하고 핍박한다는 것은 마치 가시돋힌 채찍을 뒷발질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저항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리는 어리석은 일이며 악하고 고통스러운 행위였다는 것을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스데반이 만난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자신에게 사명을 주셨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었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삶의 변화였습니다.
    • 오피니언
    • 연재
    2023-03-27
  • 성경인물 시리즈 《사도바울Ⅰ》
    하나님의 사랑을 독특하게 받았던 바울은 12제자를 포함한 어떤 제자들보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적합하게 훈련되고 경험되어진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교 율법에 관한 지식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학식이었으며 그에 따르는 실천도 거짓이 없는 진실이었습니다. 그의 이방인 선교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태생과 초기 활동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바울의 사역은 A.D. 30년경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초대교회 역사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동참했고 그 자리에 있었던 스데반집사의 순교로부터 이어지는 교회의 대 박해에서 활약을 드러내기 시작한 바울은 이후 A.D.58년 제 3차 전도여행까지 이어지며, 그가 사역할 당시 예루살렘의 분봉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A.D. 41-44)였습니다. 바울의 유대식 이름인 사울은 사도행전 13장 9절까지 언급되어지고 이후에는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됩니다.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났는데 제롬(Jerome 342-420)에 의하면 바울은 갈릴리에 있는 기살랴에 살다가 로마가 팔레스틴을 정복하던 때에 다소지방으로 이주하였다고 합니다. 유대법은 소년이 다섯 살이 되면 성경공부를 시작하고 열 살이 되면 율법전승을 공부해야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역시 어려서부터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유대인들이 고귀하게 생각하는 육체노동과 지적 능력이 신체적 활동성과 병행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서와 전통을 공부하는 한편, 당시에 중산층 이상이 가질 수 있었던 직업인 천막 제조 기술을 익혔던 것입니다. 13세가 되면 유대 소년은 「바르미츠바(계명의 아들)」가 되어 전적으로 율법을 지킬 책임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가말리엘(Gamaliel) 1세의 문하에서 조사들의 엄한 율법교육을 받았습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행22:3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빌3:5 바울이 자란 다소 지역은 상업과 정치권력의 중심지이며 대학도시로써 학문에 대한 열심과 지적 수준이 매우 높았으며 특히 스토아철학자들이 유명했던 지역이었습니다. 또한 국제도시로 세계적 교류가 가능했고 역사적 도시로써 그곳에 사는 시민들은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했습니다. 다소출신의 이방 선교사가 필요했음은 그 지역의 특징으로도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며 특히 그곳이 이방세계의 물결이 합류되고 모든 세계의 사람들이 무역관계로 이곳에 몰려들었습니다. 바울의 출신 성분과 교육 그리고 그의 삶의 자리였던 다소에서 그는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로서 당시 외국인이 가질 수 없는 로마 시민권이 있다는 것은 상당한 부유층에 속하는 계급이었을 것이며 가문 역시 물질적, 정신적, 지적 수준이 매우 높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바울이 가졌던 해박한 율법의 지식, 바리새적 훈련, 헬라철학의 소양은 신앙과 결부되어 조화를 이룬 위대한 사상을 가졌으며 그가 복음을 접목한 뒤에는 기독교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전파하기 가장 적합한 이상적인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행9:11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행21:39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유대교식 교육과 경험에 나오는 율법과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의 사명에 있어서 문제시 되는 것이 율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율법에 대한 태도는 갈라디아서에서 유대인들의 독특한 관습이나 법들이 처음의 의도와는 달르게 인간의 삶을 제한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선민으로서 관습인 할례와 안식일을 지키는 법, 식사예절 등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당시 바리새인들이 자주 시비거리를 만들던 관습이었습니다. 특히, 할례는 유대인들이 남자아이를 낳은 지 8일 만에 행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의 일부 내용에 따른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교로 개종하는 모든 남자는 의무적으로 할례를 받도록 되어 있었는데 기독교로 개종해야 하는 사람에게 모두 적용시킨다면 관습에 대한 공포로 전도의 효과는 지금과 같이 않았을 것입니다. 참고로 1세기 할례는 마취도 없이 칼로 남성의 표피를 잘라내는 것이었기에 유대인들과 다른 문화권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부당한 것이었으며 만약 바울이 할례 받기를 고수했다면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데 기존의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갈5:11 그러나 바울의 할례에 대한 관습을 철저하게 저항하며 율법이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박하고 갇힌 자가 되게 하므로 인간에게서 자유가 없어졌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3:21~23 사도바울이 전하는 율법의 관습은 진리가 아니며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폐지해햐 하는 것이며 그래야만 이방인들에게 십자가의 도를 전할 수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 자체가 인간을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인이 된 것처럼 믿음으로 의로다 함을 받게 되며, 그 결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 오피니언
    • 연재
    2023-03-24
  • 쉽고 재미있는 신학 이야기
    미국의 『크리스천 월드』라는 종교 잡지에서 세계 50대 교회 가운데 한국에 있는 교회가 23개가 된다고 보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기독교 역사로 봐도 괄목할만한 성장이며 가부장적인 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시대 암흑의 시대를 넘어 6·25 동란이라는 전쟁을 겪은 민족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외적인 성장을 중심으로 교인의 수를 확장하는데 열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한국교회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도덕적 영향력이 미미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매일의 뉴스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한국 사회는 폭력이 난무하며 거짓과 부정부패 그리고 타락과 향락, 이기심과 빈부의 격차가 심화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는 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서 정치경제 사회적인 문제를 뒷순위로 한다면, 단연 앞장설 것은 교회 부흥과 맞물려 경제를 발전했던 한국이기에 사랑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길 원하셨던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성실히 이행하지 못한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책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따르던 무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라’라고 말씀하셨지만, 작금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을 뿐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천국의 비유로 말씀하셨던 것처럼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만큼 힘든 사명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은혜에 의한 한국교회의 부흥 성장 이전의 한국 역사를 환란과 고통의 역사라고 한다면, 위대한 성경 인물들의 삶 역시 환란과 고통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위대한 인물이 된 것을 성경을 통한 증거로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고 전한 것처럼 하나님 은혜의 이면에는 반드시 수반되는 과정으로서의 고난의 길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의 성장에서 고난의 경험은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한 사랑으로 함께 하시는 절대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한계적인 지식에서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의 경험에서 다듬어지며 변화됩니다. 즉 내적 갈등을 수반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이며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에 순종하게 되고 자신의 한계를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성취 가능하게 하는 겸손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속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고난의 과정은 신앙 성숙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며 자신의 이기를 목적으로 살던 삶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적인 삶으로의 전환이 되는 거룩한 길입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성경 인물들의 삶을 조명해 보면서 그들의 삶에 내포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고 각자의 환경에서 순종하는 방법과 주신 사명에 대한 깨달음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실천하는 소망공동체
    • 오피니언
    • 연재
    2023-03-23
  • 오늘부터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20일부터 버스와 지하철, 택시 등 대중교통과 마트·역사 내 약국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다. 지난 1월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었지만, 밀집·밀폐·밀접 공간인 대중교통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오늘부터는 마스크 착용의 무를 전면 해제하고, 출·퇴근 시간대에는 마스크 착용을 적극적으로 권고한다. 마트·역사 등 대형시설 내 개방형 약국은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다. 벽이나 칸막이가 없어 실내 공기 흐름이 유지되고, 다른 공간과 명확히 구분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였다. 다만, 약국 종사자의 경우는 마스크 착용이 권고되고, 일반 약국의 경우는 착용 의무가 유지된다. 마스크 착용 의무는 해제되었지만, 코로나 감염 위험이 사라진 건 아니므로 위생·방역 수칙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
    • 오피니언
    • 컬럼
    2023-03-20
  • 달래 효능
    봄 하면 떠오르는 나물인 달래는 3~4월이 제철로, 이때 영양이 가장 풍부하다. 마늘과 모양이 비슷해 작은 마늘이라고도 불리며 맛은 맵고, 성질은 따뜻해서 혈액순환을 돕고 몸의 저항력을 높여준다. 달래는 특유의 향으로 봄철 입맛을 돋워준다. 달래의 매운맛을 내는 알리신 성분이 미각을 자극해 겨울철 떨어져 있는 입맛을 살려준다. 이 성분은 혈액순환을 촉진해 동맥경화 및 고혈압 등 혈관 질환을 예방한다. 다만 다량 섭취 시 위산이 올라올 수 있으니 적정량 섭취해야 한다. 달래의 줄기에는 비타민A, B1, B2, C가 골고루 들어 있어 봄철 활력 충전에 효과적이다. 비타민이 부족하면 저항력이 약해지고, 입술 터짐, 잇몸병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달래에는 비타민이 풍부하여 피로 해소에 도움을 준다. 또, 신진대사를 촉진하여 식욕부진이나 춘곤증에 효능이 있다. 달래에는 빈혈 예방에 좋은 철분이 들어 있는데, 달래의 비타민C는 철분 흡수율을 더욱 높여준다. 칼슘도 풍부해 성장기 어린이나 갱년기 여성, 노인에게도 좋은 식품이다. 한편, 달래를 가열하면 영양 손실이 크므로 조리하지 않고 가능한 한 생으로 먹는 것이 좋다.
    • 오피니언
    • 컬럼
    2023-03-09
  • 미나리 효능
    3월이 제철인 미나리는 봄을 대표하는 나물 중 하나로 전, 찌개 등 다양한 요리로 즐길 수 있으며 생으로 먹으면 더욱 좋다. 미나리 효능에는 ▲해독작용 ▲간 기능 향상 ▲피부미용 ▲변비 예방 ▲고혈압 도움 등이 있다. 미나리는 해독 및 중금속 배출 효과에 탁월해 해장국에 많이 사용된다. 음식과 함께 들어온 중금속 등을 흡수하여 체외로 쉽게 내보내도록 도와준다. 미나리에는 간 해독은 물론 간 기능을 원활하게 해주는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간 기능 향상과 숙취에도 도움이 된다. 미나리의 시원한 성질은 염증을 가라앉히고 급성 간염과 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간경화에도 효과적이다. 또한, 소변이 잘 배출되게 해서 간의 부하도 줄여주며, 신장, 방광염이 있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미나리에 함유된 퀘르세틴과 캠프페롤 성분은 항산화 효능이 뛰어나 체내 활성산소를 억제하여 세포가 산화되는 것을 막아 노화를 지연시키고, 피부 노폐물 배출을 도와주며 기미, 주근깨 등의 잡티를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다. 미나리의 풍부한 섬유질은 장의 운동을 촉진하여 배변이 원활하도록 도와준다. 미나리는 현관을 맑게 정화 시켜주는 효과가 있어 혈압과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시켜주기 때문에 고혈압에 도움이 된다.
    • 오피니언
    2023-03-08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