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뉴스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당진시, 국토부 불법 하도급 집중 단속 결과 반면교사 삼아야
    당진시는 빠르게 산업사회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막상 산업사회 첫걸음인 건설 현장에 들어가 보면 토속 업체는 먼 산 바라보는 구경꾼 내지는 허드렛일을 하는 조공으로 전락해 있다. 공사의 주권은 타 지역에 주소를 두고 있거나 명맥상 주소만 당진에 두고 간이 사무실만 설치한 업체들이 대부분이다. 당진시 입주를 진행하는 업체들이 발주하는 공사는 대부분 최저가 입찰이다. 가뭄에 콩나듯 하나의 공사가 나오더라도 지역업체들은 면허와 경력 등 조건에서 탈락되기 일수다. 이런 현상은 시행사가 시공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부터 관행으로 이어져온 공생 관계 때문이다. 지난 9월 20일, 국토교통부는 보도 자료를 통해 100일 간 불법하도급 집중단속을 실시한 결과 35.3%에 달하는 179개 현장에서 불법 관행이 적발됐다고 한다. 단속은 건설현장 채용강요 및 부당금품 수수 등 근절을 위한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대책의 후속조치로, 5월 23일부터 8월 30일까지 실시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건설사가 근로자에게 직접 지급한 현장 가운데 임금 비중이 현저히 낮은 508곳을 조사한 결과 179개 현장(35.2%)에서 249개 건설사의 333건의 불법하도급이 적발됐다. 유형별로는 무등록자를 포함한 무자격자 불법하도급이 221건으로 가장 많았다. 우선 불법하도급으로 인한 기대이익보다 비용이 더 커지도록 건설사에 관리 의무를 부여하고 처벌수준을 강화한다고 한다. 이 같은 단속 결과에 따라 ▷불법하도급 때 처벌 등 제재 강화 ▷발주자·원도급사의 하도급 관리의무 강화 ▷발주자·원도급사가 불법하도급 적발 때 계약해지권 부여 ▷감리의 하도급 관리의무 강화 등 상시단속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불법하도급을 준 건설사의 등록말소, 과징금 규정을 강화하고 발주자·원도급사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도 신설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불법하도급 확인 시 발주자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고 하는데 실효성에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본사에서 암암리 이루어지는 계약과 이미 정해진 업체들 간 오랜 거래로 이루어진 공생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수 적발된 공종과 유형에 대해서는 조기포착이 가능하도록 조치하고 추출된 업체에 대해 현장단속을 상시 실시한다. 실효성 확보를 위해 특별사법경찰도 도입한다고 한다. 이와 함께 공공발주 공사 전수점검을 실시하고 단속된 업체에 대해 처분관청(지자체)이 제대로 처분하는지도 관리하기로 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건설현장 정상화는 불법하도급 근절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있다"며 "불법하도급 근절을 위해 지속적으로 힘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청과 도급으로 이어지는 현상은 공사를 수주 받은 기업들도 원가 절감에 있어 한계에 다다른 시점이기 때문이다. 기술력으로 원가를 절감하는 것에도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기업들은 가장 손쉬운 원가절감 방법으로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공사금액 낮추기를 사용한다. 원청과 하청업체들은 일정 수익을 챙기고 불법 하도급과 이를 모방한 모작으로 진행하는 공사가 그나마 원청사와 하청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원청사와 하청사를 제외하고 도급사와 모작사들 입장에서는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틀어서 돈을 뺏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업들은 그렇게 절약된 비용으로 수익증가를 이뤘으나 그 자본으로 새로운 투자를 하거나 고용창출에 나서지 않고 천문학적인 ‘사내유보금’만 쌓아놓고 있다고 한다. 고향에서 이루지는 공사 현장에서 어렵사리 공사를 하도급이나 재하도급의 형식으로 수주한다고 해도 이익 내기가 어렵다. 최저가 입찰이 도입되고부터 실질 공사비는 그만큼 낮아져 업체마다 적자를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한다. 더구나 겨우 최저가에 입찰 하도급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공사 금액을 더 낮추라고 강요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해마다 인건비와 자재비는 수직 상승하고 있는데 공사의 계약단가는 제자리걸음이거나 아니면 소폭 상승에 그치고 있다고 푸념한다. 이로 인해 지역의 중소건설업체는 심각한 경영난과 더불어 부실공사의 위험, 산업재해 사건의 빈발 등 여러 부작용도 함께 우려되고 있다. 하도급은 기업 간의 계약에서 특정 업무를 본 계약자나 다른 업체에게 위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도급과 모작의 경우 일정 금액의 계약자 몫을 제하고 하부 업체에게 위탁하기 때문에 원계약자의 책임 회피, 품질 저하, 불공정한 경쟁 등의 문제를 발생할 수 있다. 지역의 중소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제 지역제한입찰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다. 그리고 큰 공사를 수주할 때는 대기업과 지역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입찰에 참여하는 것을 의무화 할 필요도 있다. 대기업과 지역의 중소기업이 컨소시엄을 이뤄서 입찰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안이다. 그리고 중소 규모의 공사에 대해서는 지역 업체에 가산점을 부여해 지역 업체의 공사 참여 비율을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는 까닭은 지금까지 지방의 각종 민간투자 사업은 거대 자본력을 가진 대기업의 독무대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술력이 좋아도 지역의 중소기업은 대규모 공사에 참여하는 것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하청업체의 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역의 중소 건설업체들이 이러한 공사에 실효성 있게 지분 참여를 할 수 있도록 공동도급의 방식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중소규모의 공사에 대해서는 최소한 지역 업체의 참여에 대해 가산점을 부여하는 강제적 조치도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공사의 지역 업체 제한이나 지역의무 공동도급제 같은 지역 업체 보호제도가 공정경쟁을 저해하고 지역 이기주의적 발로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경제 개발 초기부터 1군 건설업체들에게 모든 자본을 독점적으로 이용하게 하여 몸집을 키웠다. 결국 오늘날의 대기업은 공동체의 희생 위에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이제는 지역의 중소 건설 물량은 이제 지역 중소 업체들이 수주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역 제한 입찰제도 또한 이미 여러 도시들이 시행을 하고 있는 정책이다. 우리나라의 산업도시들 대부분이 이미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서 지역 업체의 매출 증대와 생산성을 높여주고 있다. 서울·경기에 있는 업체가 공사만 따서 일은 안 하고 지역 업체에 재하청을 준 뒤에 실속은 다 가져가는 모습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공사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물품 구매도 마찬가지다. 공공 공사이건 민간 공사이건 최저가 입찰이 아닌 정당한 가격에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 경제의 근간인 지역 근로자의 고용 안정과 임금인상, 그리고 지역의 소비 확대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가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경제 활성화 이제 지역에 입주한 기업과 관리부처의 솔선수범으로 해결할 수 있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하는 후보자를 비롯해 당진시민의 표를 얻어 활동하는 정치인들이 작금의 지역 사정을 간파하고 지역을 위해, 토속기업과 근로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행정적 지원과 법적 제도 개선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 가능하다. 아울러 현재 진행되는 건설현장에서 불법하도급으로 인한 폐해를 미리 감시하고 적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만연된 불법하도급은 공사비를 낮추고 낮아진 공사비는 지역에서 소규모로 운영하는 인력회사와 장비업체를 비롯해 식당과 건자재 납품업체 등에게 미수금이라는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 하도급사의 공사중지나 부도라는 불미스러운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대책도 수립해야 당진시가 안정된 산업사회로 가는 바른 길이 될 것이다.
    • 오피니언
    • 컬럼
    2023-11-02
  • 바닥분수 안전하게 이용하기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면서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등에서 바닥분수를 개장했다. 바닥분수는 아이들이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특히, 안전에 주의하여야 한다. 바닥분수 물놀이장을 이용할 때는 미끄러워 넘어질 수 있으니 ▲뛰거나 과도한 장난은 자제해야 한다. ▲신발을 벗고 이용하거나, 별도 물놀이용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좋다. ▲영유아의 경우 수영장용 기저귀를 착용해야 하며, ▲수경시설 인접 장소에서 기저귀 교체는 삼가야 한다. ▲피부병, 전염병 등 질환이 있거나, ▲구토 및 설사 등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이용을 금지한다. ▲시설 내의 물을 마시거나 ▲음식물 및 이물질(유리, 뾰족한 물건 등)을 버려서는 안 된다. 또한, ▲물속에 침을 뱉는 행위 및 대소변 금지 ▲애완동물과 함께 들어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염소 소독에 따라 색상이 있는 의복은 탈색에 주의하고, ▲물놀이 후에는 빠른 시간 내에 깨끗한 물로 씻어야 한다.
    • 오피니언
    • 컬럼
    2023-06-23
  • 풍수해보험으로 올여름 미리 대비하세요
    올해 여름 작년보다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어, 풍수해보험에 가입할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풍수해보험이란 9개의 자연 재난으로 발생하는 재산피해를 보상해 주는 정책보험이다. 9개의 자연 재난에는 태풍, 호우, 홍수, 강풍, 풍랑, 해일, 대설, 지진, 지진해일이 해당한다. 풍수해보험은 보험료 일부를 국가 및 지자체에서 보조함으로써 국민은 저렴한 보험료로 예기치 못한 풍수해에 대해 스스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선진국형 재난관리 제도이다. 보험은 민간보험사를 통해 판매·운영되나 보험사업 전반에 대해서는 행정안전부가 관장한다. 정부가 보험료의 70% 이상 지원하며, 경제 취약계층(기초생활보장, 차상위, 한부모가정)에는 보험료를 전액 지원한다. 가입대상은 주택, 온실(비닐하우스 포함), 소상공인(상가·공장건물) 등으로, 시설물을 소유한 사람뿐 아니라 세입자도 가입할 수 있다. 7개의 민간보험사를 통해 연중 가입 가능하며, 자세한 내용은 국민재난안전포털(https://www.safekorea.go.kr/) 보험상품 세부 정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오피니언
    • 컬럼
    2023-06-09
  • 탄소중립 생활수칙 ➂
    지구 온난화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탄소중립’ 운동을 시행하고 있다. ‘탄소중립’이란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배출된 온실가스를 흡수하거나 제거하여 실질적인 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를 말한다. 학교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저탄소 생활 실천 방법에는 ▲자원절약과 재활용하기 ▲교복 물려주기 ▲저탄소 식단 운영 ▲물 절약하기 ▲전자기기 사용 줄이기 등이 있다. ▵개인 컵 사용하기 ▵행사 시 일회용 컵 대신 다회용 컵 사용하기 ▵인쇄 시 양면인쇄, 모아찍기, 흑백인쇄 이용하기 ▵이면지 정리함 마련하기 ▵종이타월, 핸드드라이어 대신 개인 손수건 사용하기 등으로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 재활용을 위해 ▵교내에 분리배출 쓰레기통 설치 ▵올바른 분리배출 설명 ▵페트병의 라벨과 뚜껑 링은 제거하고, ▵분리배출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한다. ▵안 입는 교복은 물려주거나 기증하기 ▵졸업 시기에 맞추어 교복 물려주기 행사 개최를 통해 교복 물려주기를 실천하는 것도 탄소중립에 효과적이다. 저탄소 식단 운영 방법은 ▵지역농산물(로컬푸드) ▵제철 식재료 ▵저탄소 인증 농축산물 및 국내산 식재료 ▵조리 시, 열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생채 식단 등으로 메뉴를 구성한다. ▵음식은 먹을 만큼만 담기 ▵교내 텃밭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급식 식재료로 활용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절수 설비 또는 기기 설치하기 ▵걸레 빨래 시 양동이에 물 받아서 사용하기 ▵양치 시 컵 사용하기 등으로 물을 절약할 수 있다. ▵빈 교실의 조명은 소등하기 ▵주간에는 자연채광 활용하기 ▵창 측과 복도 측 조명 소등하기 ▵전자기기 대기전력 차단하기 ▵실내 적정온도 설정하기 등으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등하교 시 대중교통 및 도보 이용하기 ▵자동차 요일제 시행하기 ▵나무 심고 가꾸기 등으로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
    • 오피니언
    • 컬럼
    2023-05-15
  • 성경 인물 시리즈 《작은 야고보》
    성경 인물 시리즈 예수님의 12제자 중 《작은 야고보》입니다. 작은 야고보에 관하여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보다 나이가 어렸거나 키가 작은 데서 붙여진 것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도 그는 ‘작은 야고보’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막15:40 그는 12제자 명단에서 소개할 때, 단지 알패오의 아들이라는 것뿐이며 다른 행적이 전해지지 않고 있어서 그를 소개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야고보 역시 여느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제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사실을 분명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스승으로 섬기며 3년 동안 가르침 받고 수종을 들며 하나님의 나라와 각자에게 주시는 사명을 감당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또한 십자가와 부활을 목격한 증인으로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강림이 있던 때에는 성령 충만함을 받고, 마지막 주님의 명령에 따라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작은 야고보의 사역에 관하여 설명을 드리자면, 먼저 성경에 등장하는 세 명의 야고보를 이해해야 하는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게시해 드린 큰 야고보에 대하여는 게시 글을 참조하시고 오늘 게시되는 작은 야고보에 관해서는 성경 말씀을 토대로 예수님과 형제였던 야고보를 비교해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에 관하여는 사도행전 15장의 내용으로 예루살렘교회에 회의가 열리게 되었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어떻게 적용을 시킬 것인가? 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우리도 감당치 못한 부분을 그들에게 요구하는 건 적절하지 못하며 저들도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줄 아노라"(행15:7-11) 라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발언이 끝나고 다음으로 야고보가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가 있다면 그들을 율법 때문에 힘들게 하지 말자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은 것과 그 피를 멀리하라고 이야기를 하자"(행15:13-20) 라고 주장하였고 그 주장이 관철되었습니다. 그의 주장은 유대교적 교리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도 아니었으며 모여 있던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주장이었기에 관철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명확하게 주장했던 야고보는 이미 헤롯에 의해 죽음(행12:1)을 당한 큰 야고보가 아닌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였습니다. 고전 15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12제자와 야고보를 구분하여 보이신 부분을 기록하고 있는데 게바에게, 열두제자에게, 오백여 형제에게, 야고보에게 순으로 보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의 구절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예루살렘교회 회의에서 발언한 야고보는 큰 야고보나 작은 야고보가 아닌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알패오의 아들 "작은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는 장면을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지켜보았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작은 야고보 어머니의 이름이 마리아였다는 것과 그 어머니의 아들이 ‘요세’였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작은 야고보 어머니의 이름이 마리아였다는 것과 그 어머니의 또 다른 아들이 ‘요세’였음을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막 15:40-41 ‘요세’라는 이름은 헬라어 발음으로서 야고보의 다른 형제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를 증거로 예수님 제자들의 이름을 살피면 알패오의 아들 작은 야고보와 같은 아버지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알패오의 아들 레위입니다.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막2:14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감림을 기다리던 제자들의 이름을 거명할 때도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고 묶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을 증거로 그들이 형제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많은 학자들도 그들이 형제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사역을 찾아볼 수 있는 복음서나 사도행전에서 작은 야고보의 사역을 찾을 수는 없지만 유명한 기독교 역사학자인 유세비우스는 작은 야고보에게 ‘낙타무릎을 가진 사도’ 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을 정도로 기도에 힘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의 기도하는 습관을 가장 많이 닮은 제자가 야고보였다고 전해집니다. 작은 야고보는 우리에게는 별로 알려지지는 않은 사도지만 그는 분명히 주님으로부터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하여 뽑힘을 받은 제자였고 주님과 함께 이 땅에 복음 전도사역을 함께 감당하였던 신실한 사도였습니다. 부정 축재로 재물을 많이 모았던 마태를 형으로 둔 작은 야고보는 부유한 삶에서 부러움 없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형 레위 마태를 따라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조용히 기도하는 사역으로 자신이 나서면 주님의 영광을 가리울까 조바심 내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에 충실히 기도하며 순종했고 오직 예수님의 가르침에 열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작은 야고보는 시리아에 선교를 가서 목숨 걸고 복음을 전했으며 예루살렘에 돌아와 전도를 하다가 스데반 집사처럼 기독교를 박해는 하는 사람들에 의해 모질게 돌에 맞았으나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를 지켜보던 유대인들이 살아있는 작은 야고보를 톱으로 켜서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시신은 예루살렘이 묻혔다가 나중엔 콘스탄티노플에 옮겨졌고, A.D. 572년에 다시 로마로 옮겨졌다고 전해지며 그의 시신이 묻혔던 곳에 ‘성 야고보교회’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이 교회를 훗날 ‘거룩한 사도의 교회’라고 별도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 오피니언
    • 연재
    2023-05-09
  • 성경 인물 시리즈 《대(大)야고보》
    성경 인물 시리즈 예수님의 12제자 중 《대(大)야고보》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야고보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예수님의 육적 형제인 야고보와 예수님의 12제자 중 두 명의 제자입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 역시 예수님의 12제자 중 ‘야고보’라는 이름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이름 앞에 그들의 아버지 이름을 거명하는 것으로 각각 다른 사람임을 명시했습니다. 성경에서 그들을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로 구분합니다. 오늘은 요한의 형이었던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에 대해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또 다른 사도인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동명이인이라 혼동을 피하기 위해 흔히 ‘대(大)야고보’라고 하며 베드로 요한과 더불어 예수님의 핵심적인 제자였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그를 동생 요한과 같이 다혈질적인 성격이었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 역시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칭을 예수님께서 지어주셨던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막3:13-19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더불어 야고보를 변화산에도 동행시키셨고,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실 때도,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도, 마지막 기도하시던 겟세마네 동산에도 동행시키심으로 그에게 영적 무장과 더불어 온전한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세베대의 두 아들인 요한과 야고보를 특별하게 훈련시킨 목적과 그들의 성격과 삶의 정도를 잘 드러나는 사건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사마리아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들어갔을 때 자신들을 환대해 주지 않자 그들에게 불로 멸하게 하자고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어머니 세베대의 아내 살로메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을 앞두신 시점에 두 아들 요한과 야고보를 위해서 주의 나라가 임하면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청탁을 하는 것으로도 삶의 정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청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구나! 너희는 내가 마시고자 하는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느냐?” 라고 그들에게 묻습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은 “예,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고 이 대답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순교의 잔을 마시고 고통의 세례를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나의 오른편이나 왼편에 앉는 특권은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이들을 위한 것이다.” 라고 답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다른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의 야심에 화를 내자, 예수님께서는 너희들 중에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며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라고 훈계하심으로 권력의 목적은 봉사하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거나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14년쯤 지나 로마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서 초대 기독교인의 교회 중 몇 사람을 죽이려고 했을 때, 12제자 중 최초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는 교회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을 골라서 죽이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교회에서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던 사도들 중 특별하게 이름을 떨치고 있던 사도를 선택을 했을 것이고, 시범적으로 야고보를 선택해서 죽였을 것입니다.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행12:1-2 이렇듯 12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이기에 전해 내려오는 자료가 많지 않으며 순교하기 전까지 스페인에서 수년간 선교활동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 오피니언
    • 연재
    2023-05-09
  • 탄소중립 생활수칙 ②
    지구 온난화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탄소중립’ 운동을 시행하고 있다. ‘탄소중립’이란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배출된 온실가스를 흡수하거나 제거하여 실질적인 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를 말한다. 기업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저탄소 생활 실천 방법에는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종이 사용 줄이기 ▲걷기, 자전거, 대중교통 이용하기 ▲에너지 사용 줄이기 등이 있다. ▵회의·행사 등 진행 시 1회용품 사용 자제하기 ▵개인 컵 이용하기 ▵다회용 컵 갖추기 ▵기업 내 매점·식당·커피전문점 플라스틱 사용 줄이기 ▵1회용품 줄이기 실천지침 만들기 ▵손 씻은 후 종이타월 대신 손수건 사용하기 등으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종이 없는 회의 활성화하기 ▵이면지 사용하기 ▵양면인쇄, 모아찍기 등의 기능 활용하기 ▵청구서, 영수증 등 전자적 제공서비스 이용하기 등으로 종이 사용을 줄이는 것도 효과적이다. ▵출퇴근 시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홍보하는 것도 기업에서 할 일로 매우 중요하다. ▵편의시설 및 혜택을 만들어 실천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싱크대, 화장실 등의 수전 절수 설비 설치하기 ▵세면대, 양변기에 절수기기 장착하기 ▵전자기기 대기전력 차단하기 ▵컴퓨터 절전 기능 사용하기 ▵승강기 격층 운행하기 ▵이동시 승강기 대신 계단 이용하기 ▵실내온도(여름철 25~28℃, 겨울철 18~20℃) 유지하기 고효율 전자기기 사용하기 등으로 에너지 절감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사무실 내외 식물 가꾸기 ▵분리배출 실천하기 등 작은 습관들로 탄소 줄이기를 실천할 수 있다.
    • 오피니언
    • 컬럼
    2023-05-03
  • 성경 인물 시리즈 《빌립》
    성경 인물 시리즈 예수님의 12제자 중 《빌립》 입니다.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복음) 기자들에 의하면 빌립은 그다지 중요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빌립의 이름은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 거명이 될 뿐 그 외에는 언급되는 사건은 물론이고 묘사조차 없다는 것으로 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령을 정화시켜 육적인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의 전환하는 방법을 깨닫게 하시고 영안을 열어 주신 요한의 기록에는 빌립에 대하여 4가지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세례요한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어린양” 이라는 세례요한의 말에 안드레와 함께 예수님을 따르며 이튿날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가려 하시다가 안드레와 한 동네 벳세다 사람 빌립을 만나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에게 있어서 특이점이라면, 자신들은 세례요한의 제자들로서 열심을 가지고 죄에 대해 알고자 노력하였고 실천하였으며 메시아를 찾고자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그저 조용하고 그리 인상적이지도 않으며 평범한 유대인이었던 그에게 찾아가 자신들에게 물으셨던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묻지도 않으시며 예수님께서 찾으시던 양처럼 단번에 찾아가셔서 앞장서시며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최적의 상태에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만나 “나를 따르라”는 말에 곧바로 따라가 가르침을 받았으며 바로 나다나엘을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다나엘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는 말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했던 말씀이신 “와서 보라”는 말로 전도를 했던 것입니다. 빌립은 유대인들의 율법서인 모세 5경과 선지서에 식견을 가지고 있는 유대교 신앙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고 선지서에 예언되어 있는 메시아를 대망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나다나엘에게 “선지가가 기록한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는 말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이며 임마누엘의 메시아를 묘사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의 심정을 아시는 예수님께 제자의 한사람으로 택함을 받게 되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하며 여러 가지 가르침과 “귀신을 내어 쫓고 병을 고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사도”로 사역을 시작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사역을 시작하고 권능으로 인해서 많은 기적이 나타나 많은 무리가 따랐고 몰려드는 군중들에게 먹이실 것을 생각하셨을 때, 빌립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이 질문이 빌립에게 주어졌다는 것에 대한 요한의 이해는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는 내용으로 제자들 가운데 아직 확신의 믿음이 부족한 빌립에게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는 전능자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질문에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합니다.” 라는 것이었고 이는 그의 믿음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이성적이고 인본주의적인 믿음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깨달음이나 능력이 많은 정도의 사람으로 생각을 했던 것이며 자신이 타산적인 것처럼 예수님 역시 타산적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하셔서 군중을 한 오십 명씩 떼를 지어 넓은 잔디에 앉게 하시고 안드레가 군중 속 한 아이가 가지고 있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축사하시고 나눠 주셨습니다. 그것을 받아먹은 사람의 수는 약 오천 명쯤 되었고, 그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에 찼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것은 빌립과 다른 제자들을 비롯한 따르던 군중으로 하여금 능력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늘에서 내려온 산 생명의 떡이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음을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6장 51절 예수님의 사역 중 마지막 유월절에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을 때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 헬라인 몇이 빌립에게 가서 예수님을 만나게 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 헬라인들은 이교도들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로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올라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유대교 적 메시아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궁금증과 인간의 삶의 목적을 정하는 데 중요한 지침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소원을 품고 방도를 강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은 유력 유대인들의 반대가 심했고 예수님께서도 유대인들에게만 말씀을 가르치셨기 때문에 빌립은 동향 사람 안드레와 상의한 후 그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갔습니다. 빌립이 데리고 온 헬라인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따르는 군중들을 향해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한복음 12장 23절부터 25절 예수님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의 핍박과 반대로 이방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방인들을 위한 구원의 과정으로 먼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게서 그들의 대속으로 죽으시고 그 죽음으로 부활 승천하셔서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을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과 온 인류를 위한 구속의 죽음이시라는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썩어 없어질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의 생명이 발육하여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은 자연적으로도 당연한 이치인 것처럼 예수님의 구원을 자연적인 이치를 설명하고 계신 말씀인 것입니다. 이는 믿음이 부족한 빌립의 전도이자 선교로서 유대인에게 이방인인 헬라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것 자체가 그의 사명이었으며 그로 인해 예수님께서 다시금 선포하시기를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12장 27절부터 28절 빌립이 예수님께 헬라인을 데리고 간 것은 스스로 잘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주저하며 알지 못했으나 예수님의 말씀으로 또한 하늘에서 울리는 소리로 인해서 율법 시대의 끝을 알리고 복음의 새 시대를 여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이 있은 지 몇 시간이 되지 않아서 빌립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요한복음 14장 1절부터 4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요한복음 14장 1절부터 4절 이 말씀에 의심 많은 도마가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라고 주저하게 됩니다. 도마의 주저함에 예수님께서는 다시금 제자들에 말씀해 주십니다.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 요한복음 14장 6절부터 7절 예수님의 진지하신 말씀에도 빌립은 연약한 믿음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다 더 분명히 알고 싶은 심정에서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며 족하겠습니다.” 라고 놀라운 발언을 했습니다. 빌립은 자신이 율법서나 선지자들의 기록을 통해서 알고 있었던 하나님을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는 모세에게 임했던 하나님,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임했던 하나님, 이사야에게 임했던 하나님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 영광의 광채를 직접 보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빌립의 연약한 믿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써 후에 요한의 기록에 증거한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하나님”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빌립의 놀라운 발언에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권면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14장 9절부터 11절 예수님께서는 빌립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며 족하겠습니다.” 라는 말에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같이 했는데도 아직 알지 못하느냐? 라는 책망은 메시아라고 고백하며 따른 시간들의 허무함을 책망한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갈망하며 찾아 헤매던 메시아와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고도 알지 못하였다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드렸던 기도의 목적도 몰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을 비롯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에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룰 것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도 책망의 이유였던 것입니다. 빌립을 책망하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과 하나님께서 하나이신 이유를 설명하셨고 그럼에도 믿음이 부족하다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믿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책망과 진리의 말씀을 듣고 빌립은 말문이 막혀 버렸고 예수님께서도 더 이상 빌립이나 제자들을 질책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의 질문으로 하여금 중요한 말씀들을 남기셨는데 요한복음 14장 9절 이하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로 시작하는 진리의 말씀은 21절까지 이어지며 내용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사역에 대한, 기도에 대한, 성령에 대한, 복음에 대한 가르치심이었습니다. #성경인물시리즈
    • 오피니언
    • 연재
    2023-05-02
  • 성경 인물 시리즈 《시몬》
    성경 인물 시리즈 예수님의 12제자 중 《시몬》 입니다. 열심당원이었던 가나나인 시몬(Simon the Zealot)의 사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속해 있었던 열심당원의 의미와 당시 사회에서 자신들의 사상과 환경에 맞게 여호와 신앙을 지키고 행동했던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활동할 당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유대민족에게 죽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라고 하는 로마의 황제숭배 사상 강요에 반발한 유대인들이 항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들 중 ‘열심당원’ 이라고 하는 무리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유대인만이 세상을 다스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로마제국에 대항하였습니다. 이들은 66년에서 70년에 걸친 대대적인 유대인 반란인 제1차 유대-로마 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열심당원에 의해서 66년 예루살렘을 장악하여 4년간 버텼으나 70년에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파괴하는 것으로 전쟁이 끝났습니다. 이들의 태동과 역사는 갈릴리와 유대의 민중들의 가뭄과 굶주림으로 고통받던 40년 말기에 그들의 비폭력 투쟁이 대제사장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비폭력이지만 투쟁에 가담한 유대인들을 로마의 평화를 위협하는 비적으로 본 로마제국의 폭력에 의해서 진압당한 모습을 보면서, 대항폭력 곧 테러리즘으로 투쟁함으로써 지배계급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식민지 사회에서 지배계급보다는 지배계급에 협조하는 특권계급을 공격하는 것이 특징인데, 열심당원들도 로마제국에 협조하던 대제사장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평화 유지를 위한 로마제국의 착취, 제국에 기생하는 대제사장, 가뭄으로 인한 굶주림과 로마의 평화를 위협하는 민중운동을 레기온과 십자가형으로 탄압하는 폭력에 대한 갈릴리와 유대 민중들의 시위였던 것입니다. 유대와 로마 전쟁에 참전 후 로마군의 포로가 된 뒤 당시 상황에 대해 기록을 남긴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이 4개의 중요한 집단, 즉 바리새인, 사두개파, 에세네파, 혁명론자로 구분했으며 "열심당"은 혁명론자에 속하는 부류라고 기록했습니다. 요세푸스가 구분했던 4개의 중요 집단을 설명해 드리자면, 에세네파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비정치적으로 은둔에 가깝게 신앙을 지켜갔고,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회개와 천국을 외쳤던 세례요한이 에세네파 제사장의 아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파는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한 종교 문제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 로마제국에 어느 정도 타협하며 유대교 신앙과 율법에 관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바울이 그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이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하겠느냐 하여》 사도행전 23장 6절부터 9절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이르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주는 것은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원고들이 서서 내가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혐의는 하나도 제시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가 죽은 것을 살아 있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고발하는 것뿐이라》 사도행전 25장 13절부터 19절 이들은 무너진 이스라엘의 현실에서 자신의 삶을 위해 마태의 편에서 언급했듯이 재물을 탐했던 세리들과도 어느 정도 타협하며 지위를 이용해 실속을 차렸습니다. 그러나 열심당원들은 로마에 대한 정치적 투쟁을 우선으로 여겨 과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고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사회의 배경에서 지배계급들이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대립하였으나 로마제국의 수탈과 폭력에 고통받던 유대 민중들에게는 열심당원이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요세푸스는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이 성전의 파괴로 이어지기까지 열심당이 죽임을 일삼는 ‘공포의 지배’를 펼쳤다고 부정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당시 사료들도 열심당원들을 '유대민족의 적'으로 판단되는 이들을 공개적으로 죽일 정도로 과격한 민족주의 전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로마제국은 이들을 십자가형으로 공개처형 했는데, 예수님의 양옆 십자가에서 처형된 '강도 두 사람도 실제로는 강도가 아니라, 열심당원이었거나 적어도 로마제국에 반대하여 십자가형에 처해진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서 15장 27절에 나오는 강도 두 사람은 헬라어 레스타이(lestai)를 번역한 말인데, 이 단어는 열심당원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시몬 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베드로의 옛 이름인 시몬 이며,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부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한복음 21장 15절 다른 한 명의 시몬이 오늘 설명해 드릴 제자로서 성경은 그를 가르쳐 "가나안인 시몬" 이라고 부르며 그가 가나안 출신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를 표현하기를 "셀롯(Zealot)" 이라 하는 시몬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 단어의 뜻은 유대교의 한 종파로써 이들을 ‘열심당원’이라고 칭했습니다.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누가복음 6장 15절 셀롯이라고 하는 열심당원을 우리말 표현으로 한다면, 독립군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시몬은 열심당원으로 예수님을 만나기 전부터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사람이며,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남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에 있어서 민족과 나라를 위하는 열망과 열정은 예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열망으로 변화되었고 성령 충만을 받은 후에는 소아시아와 이집트, 그리고 흑해를 건너 영국에까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열심당원의 임무는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하며 상부의 지시가 있으면 로마와 부역하는 제사장이나 일반인들을 암살하거나 로마의 군대와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어느 때에든지 목숨을 바쳐 싸워야 하기 때문에 항상 몸에 칼을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셀롯인 시몬 외에도 시몬 베드로 역시 칼을 지니고 다녔기 때문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을 잡으려고 온 대제사장의 군병 중 말고라는 사람의 귀를 칼로 베었는데 그 칼을 베드로가 품속에 늘 품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베드로도 열심당원이었을 것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시몬이 열심당원이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성경에서 그의 사역에 대한 부분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그가 12제자에 속해 있다는 것만 기록되어 있을 뿐 그가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지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몬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배경을 추측하자면, 열심당원으로서 평소 비밀스러운 첩보활동을 하던 중 혁명적인 유대교의 가르침을 설교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감동되어 그의 적극적인 성격으로 예수님을 따랐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최선을 다했던 그가 예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시몬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그를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선택을 하셨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며 정보와 첩보에도 능했던 사람으로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활동을 하실 당시 꼭 필요한 사람이었으며 당시 불의를 행하는 종교지도자들을 꾸짖고 회개시키는 데에도 시몬의 역할이 필요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시몬의 성격과 평소 그가 바라던 이스라엘의 독립을 대망하던 열정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 예수님께 드린 질문으로 시몬의 제자 됨을 추측합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사도행전 1장 6절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한 제자가 갑자기 주님께 질문을 하는데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라고 묻습니다. 성경에는 이 질문의 주인공을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성격과 활동 사항을 살피면 이스라엘의 독립을 가장 원했던 사람이 열심당원 시몬이었고, 또한 그 꿈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독립운동을 했었기 때문에 하늘로 승천을 준비하시는 예수님께 자신의 서러움을 토로하며 질문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시몬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는 알 바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며 질문했던 제자를 무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말씀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라는 말씀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이 먼저가 아니라 복음의 세계 전파가 목적이 되는 것이며, 복음의 목적인 회개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 제자를 삼으신 목적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시몬도 예수님의 승천을 보면서 자신이 열망하던 이스라엘의 독립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선포가 먼저였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시몬이 어떠한 사역을 했는지는 성경적인 기록이 전혀 없지만 1세기경에 기록된 제자들에 관한 자료들에서 시몬을 표현할 때 꼭 물고기 그림으로 표식을 한다고 하는 것에서 추측할 수 있는 사역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카타콤이라는 지하무덤에서 예배를 드릴 때, 그리스도인임을 알 수 있는 표식이 물고기 그림에 쓰여진 ΙΧΘΥΣ (익투스)라는 단어로 서로를 알아본다고 했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라는 말의 첫 글자를 합하면 물고기라는 말인 익투스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증거로 시몬은 아마도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크게 변화를 받아서 제일 열심히 복음을 전하러 다녔고 이스라엘의 독립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하여 그의 생명을 걸었을 것입니다. 기독교 고문서 중에는 그가 처음에는 이집트에서 복음을 전했고 나중에는 최초로 영국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이후에는 페르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교도들에 의하여 톱으로 잘림을 받아서 순교를 당하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 오피니언
    • 연재
    2023-05-02
  • 탄소중립 생활수칙 ①
    지구 온난화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탄소중립’ 운동을 시행하고 있다. ‘탄소중립’이란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배출된 온실가스를 흡수하거나 제거하여 실질적인 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를 말한다.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저탄소 생활 실천 방법에는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쓰레기 분리해 배출하기 ▲걷기, 자전거, 대중교통 이용하기 ▲가전제품 사용 줄이기 등이 있다. ▵장 보러 갈 때 장바구니 이용하기 ▵외출 시 휴대하기 편한 텀블러 사용하기 ▵배달 음식 주문 시 일회용 수저, 포크 받지 않기 ▵물티슈나 휴지 대신 손수건 사용하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분리수거 시 분리배출의 원칙을 지켜 배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용기 안의 내용물은 깨끗이 비워주기 ▵이물질, 음식 등은 헹군 후 배출하기 ▵라벨, 뚜껑 등 다른 재질은 제거 후 배출 ▵품목에 맞게 제대로 분류 후에 배출하기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기 ▵버스나 지하철, 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등 승용차 이용을 일주일에 하루만 줄여도 연간 445kg의 CO₂를 줄일 수 있다.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 플러그 뽑아두기 ▵빨래는 최대한 모아서 세탁하기 ▵텔레비전 시청 시간 줄이기 ▵냉장고 적정용량 유지하기 ▵비데 절전 기능 사용하기 ▵전기밥솥 보온 기능 사용 줄이기 등으로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 이 밖에도 ▵중고 거래나 나눔장터 이용하기 ▵LED 조명으로 교체하기 ▵설거지나 양치할 때 물 받아서 사용하기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등 작은 습관들로 탄소 줄이기를 실천할 수 있다.
    • 오피니언
    • 컬럼
    2023-04-25
  • 성경인물 시리즈 《레위 마태》
    성경인물 시리즈 예수님의 12제자 중 《레위 마태》입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많이 호명 되고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호수를 꼽는다면 단연 기독교의 발상지 갈릴리 호수일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혁명 운동은 복음이라는 결과에 있어서 영구적이며 우주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은 이 작은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들인 베드로와 요한 그 형제 안드레와 야고보 등 예수님의 제자로 임명되고 복음을 전하던 갈릴리 호수의 어부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전한 생명력 있는 복음은 그들이 사역할 당시 기독교 박해자로 악명이 높았던 로마의 쥴리안 황제도 “갈릴리 사람이여 그대는 나에게 이겼도다” 라는 말로 복음의 생명력을 인정했다고 전해집니다. 오늘 전하게 될 “마태” 역시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와 요한의 형제 야고보 그리고 동생 작은 야고보와 빌립 등과 함께 갈릴리 사람입니다. 그의 본명은 알패오의 아들 레위였습니다.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가복음 2장 14절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더해 주신 것과 같이 아마도 “레위”라는 이름에 “마태”라고 불러주심으로 그 호칭이 성경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이를 증거 할 또 하나는 '마태'라는 이름이 의미하고 있는 뜻이 “하나님의 선물” 이라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개명해 주신 이유도 예수님께 매우 가치 있는 인물이 되게 할 것임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의 직업은 “세리”였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적국인 로마제국 정부에게 고용되어 자기 나라 국민들에게서 로마를 위해 세금을 징수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세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부정을 행하고 억압과 착취 그리고 뇌물을 받고 정한 세 외의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생활화 된 형태였습니다. 세례요한도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세리들이 오는 것을 보고 그들의 악행을 지적했습니다.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누가복음 3장 12절부터 13절 세리라는 직업은 유대교인들에게 악명 높은 직업이었으며,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이스라엘의 매국노였으며 수치스럽고 천시 받는 경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리와 창녀” 나 “세리와 죄인”이라는 악명을 붙여 혐오스럽고 교활한 사람들이 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하는 직업이 아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몰려드는 군중들을 가르시고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고 하셨습니다. 레위에게 있어서 “나를 따르라”는 명령은 자신이 자주 듣던 로마의 정치적 관계자의 명령보다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는 왕이 신하에게 하는 명령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명령은 예리하고 결정적인 권위에 찬 명령이었을 것이고 그 부르심은 레위가 지금까지 헤롯과 로마와 자신의 영역에서 가지고 있던 부정한 방법으로 취한 기득권과 선하지 않은 모든 관계에서 끊고 따라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레위에게 “나를 따르라”는 명령으로 자신의 기득권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못한 모든 관계를 끊으시라는 명령으로 지금까지 레위가 살아왔던 불의한 모든 생활 수단을 버리고 철저하게 예수님께 복종하고 전적으로 따르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이 명령에서 과거와 현재에 머물러 있는 명령이 아니라 복음을 위하여 장차 다가오는 환란과 공고한 사역에 동참하라는 미래를 위한 부르심이었습니다.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부정 축재와 출세의 가망이 높았던 소득과 자리를 떨쳐 버리고 순종하여 따라 나선 것입니다. 이것은 레위 자신이 예수님을 찾고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그를 선택하시고 불러서 순종하게 하셨다는 것 또한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장 16절 레위는 악명 높은 세리였지만 그가 당시 지휘와 명예가 높았고 유대교 학식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사람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보다 먼저 부름을 받았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심에 있어서 직업과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의 상태를 보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사람이 보는 레위는 겉으로 악하고 비천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께서 보시는 레위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세상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며 복음을 감당하기에 적합한 그릇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레위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선물” 이라는 뜻의 “마태” 라는 별칭으로 호명해 주시고 그에게 귀한 사역을 맡기신 것입니다. 이런 마태의 성격을 증거 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마태가 직접 기록한 마태복음에서 12제자를 호명할 때, 자신의 이름 앞에는 그렇게 악명 높고 비천한 직업이었던 “세리”를 먼저 기입함으로 자신이 죄인의 삶을 살았던 과거를 고백하는 양심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마태복음 10장 3절 마태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부르심은 양심의 가책을 살아왔던 지난날의 모든 죄과를 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었고 난생 처음으로 자신을 알아봐주는 구세주를 만난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이는 사도바울이 회개 하고 나서 자신이 바리새인으로서 “죄인 중에 내가 괴수”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타인에게 죄인으로 불리웠지만 항변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이 뼈저리게 인정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비록 재물의 정도는 자신이 상위계급이었지만 평소 평범한 삶을 그리워하던 이웃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조바심이 생긴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이어서 바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롯한 자신과 동급계층에 있던 세리와 바리새인들을 초청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마태복음 9장 10절 마태의 잔치는 아마도 자신이 알고 있던 구약의 전승에서 엘리사가 엘리야의 부름을 받았을 때 소 한 겨리를 잡고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들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쫓으며 수종을 들었 듯이 자신도 엘리사처럼 큰 잔치를 베풀고 세상과 고별하고 주님을 따르는 귀족의 절차를 따른 것으로 보여집니다.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열왕기상 19장 21절 그러나 마태의 잔치는 그의 제자 됨을 기뻐해 주는 선량한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당시 마태와 동급의 부류였던 동료들과 바리새인 등 종교지도자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잔치에 함께 있는 나사렛에서 온 젊은 청년의 종교 혁명 운동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위험한 행동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라며 유대교적 전통을 어겼다고 트집을 잡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태복음 9장 11절 그들에게 있어서 유대교적 전통으로는 세리나 죄인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율배반적으로 세리였던 마태의 잔치에 와 있는 상태였고 이는 평소 마태와 친밀하게 지내며 마태의 뇌물에 매수된 종교 지도자였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형식적인 전통은 엄격한 것으로 죄인과 함께 할 수 없지만 죄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진 상태로 사는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마태가 속해 있던 세리들에게는 매국노라고 손가락질 하고 가난하여 허름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 죄인취급을 했으며 매우 가증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그들에게는 예수님도 타락한 자로 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말씀으로 그들의 시비를 민망하게 만드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장 12절부터 13절 예수님께서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권위 있는 말씀을 듣고 마태는 자신의 선택에 만족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심정을 진심으로 이해했을 것이며 전적으로 따르며 세밀한 행동까지 기억해서 그가 기록한 복음서에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12제자로 기록되었을 뿐 어떤 사역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복음서를 기록함에 있어서 혹자는 “마태복음서는 모든 점에서 관찰할 때 기독교가 산출한 가장 중요한 책이다. 아직까지 이 이상의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이 없다.”라고 평가를 했을 정도로 마태복음서를 세상에 내 놓은 것만으로도 그의 사역은 수많은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오게 한 귀중한 사역이었습니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한 분 왕과 그분의 백성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재물과 권위 그리고 각종 죄로 말미암아 망쳐진 하나님의 백성과 세상을 복음으로 회복시키시고 다시금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나라를 만드시고자 온 인류의 구속자를 보내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 오피니언
    • 연재
    2023-04-24
  • 지구의 날
    매년 4월 22일은 지구 환경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서 자연보호 자들이 제정한 ‘지구의 날’이다. 환경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제정한 날로, 유엔이 정한 세계환경의 날(6월 5일)과는 달리 순수 민간운동에서 출발했다. 지구의 날을 맞이하여 지구를 지키기 위해 실천하는 방법으로는 ▲분리배출 원칙 지키기 ▲저탄소 생활법 실천하기 ▲텀블러 사용하기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전국 소등 행사 참여 등이 있다. 분리수거 시 분리배출의 원칙을 지켜 배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용기 안의 내용물은 깨끗이 비워주기 △이물질, 음식 등은 헹군 후 배출하기 △라벨, 뚜껑 등 다른 재질은 제거 후 배출 △품목에 맞게 제대로 분류 후에 배출하기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 지구 지키기 저탄소 생활법에는 △가까운 거리 걸어 다니기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 이용하기 △냉·난방기 온도 맞추기 △장바구니 이용하기 △친환경 상품 구매하기 등이 있다. 텀블러, 리유저블 컵, 컵 등을 사용하면 불필요한 일회용품,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지구의 날인 4월 22일에는 전국 소등행사가 진행된다. 4월 22일 오후 8시가 되면 10분간 불을 끄는 행사로 정부 지자체와 남산 서울타워, 수원 화성행궁 등 지역 명소에서도 참여하고 있다. 단 10분이지만 에너지시민연대에 따르면 2004년~2017년 10분간 소등 행사로 총 8,589,000kWh 전력을 절감했다고 한다.
    • 오피니언
    • 컬럼
    2023-04-21
  • 성경인물 시리즈 《바돌로매(나다나엘)》
    성경인물 시리즈 예수님의 12제자 중 바돌로매(나다나엘) 입니다. 바돌로매를 설명하기에 앞서, 그를 나다나엘과 동일한 인물로 보는 것이 개신교의 정설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이를 증거할 자료로는 마태복음 16장 17절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칭하실 때, '바요나 시몬아'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바돌로매’ 역시 ‘돌로매의 아들’ 이라는 뜻으로 본명은 ‘나다나엘’입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언제나 그를 전도했던 빌립과 연관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돌로매에 관해서는 요한복음 처음 부분에서 그의 소명에 관한 자료와 마지막 부분에서 뿔뿔히 흩어지는 제자들 중에 있던 한사람으로 그리고 그 다음 이어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 지상사역을 마치시고 다시금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을 때 있던 일곱 제자 중 한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바돌로매는 가나 출신이며 빌립과 같은 성정을 가진 유대교 안에서 메시아를 대망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 사람들이 회당에서 그리고 무화과 나무 우거진 그늘 아래서 또는 감람나무 그늘 아래서 자녀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교육을 받고 자랐듯이 그들 또한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에서부터 그곳에서 율법을 묵상하고 암기하며 예언의 말씀들을 배우며 기도하고 장래 자신의 길과 민족을 길 그리고 메시아에 대한 대망을 배웠을 것입니다. 바돌로매는 그런 교육이 생활이 되었을 것이고, 어려서부터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메시야를 대망하던 기다림의 장소 역시 무화과나무 아래였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함께 경전을 공부하고 묵상하며 암기했던 동료 빌립이 찾아와 기쁜 마음으로 말을 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나사렛 예수니라』 요한복음 1장 45절 바돌로매라고 별칭이 있던 나다나엘에게 나사렛이란 선한 곳이 날 수 없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선입견은 확신에서 나온 푸념이었을 것입니다. 나다날엘은 당시 나사렛에서 가까운 지역인 가나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부패한 도시 나사렛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사렛 시가는 산기슭에 위치해 있고 산 밑으로는 큰 도로가 있어서 그 길로 로마군이 행진을 하였으며 온갖 장사꾼들이 모이는 하루 밤 묵기에 편리한 도시였습니다. 그렇게 교통과 숙박이 편한 도시의 문화는 소돔과 고모라로 칭할 수 있을 정도로 부패했던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너무도 잘 알던 그런 곳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있다는 것과 자신이 어려서부터 대망하던 메시야가 그런 곳에서 나오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전도하는 빌립에게 단호하게 한마디 하였습니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요한복음 1장 46절 나다나엘의 단호한 한마디에 빌립 역시 항변하여 설명할 경험과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와보라”는 대답으로 친구의 의심 섞인 트집에 침묵으로 대신하고 예수님께 이끌고 나온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친구 빌립의 권면에 의심스러움이 가득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를 따라 나섰고 멀리에서 계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의 생태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교 경전을 함께 공부하며 메시아를 대망하던 빌립이 말하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나사렛 예수니라” 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의 또 다른 성정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보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한복음 1장 47절부터 48절 나다나엘은 당시의 위선자들과 같이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신앙생활을 들어내지 않고 조용히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은밀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혼자 진실하게 기도하던 참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나다나엘을 보시고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요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는 “참 이스라엘” 이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는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 하였던 밤에 환도뼈가 부러지면서까지 끈질기게 영적인 기도로 승리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과 싸워 승리했다.”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개명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참 이스라엘” 이라는 칭호를 쓰신 뜻은 하나님의 권위 아래 살고 있으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는 진실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성정이 있던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깊은 통찰력으로 자신을 보시고 다 아신다고 말씀하셨을 때,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두렵고 떨림의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다시금 말씀하셨습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라고 더욱 놀라운 말씀으로 나다나엘의 영혼의 울림으로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나다나엘은 자신이 늘 기도하던 영적인 대상이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영혼으로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요한복음1장 49절 나다나엘은 예수님 앞으로 나오기 전에 예수님의 눈에 미치지 못하는 먼 곳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혼자서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 생각하며 진심으로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를 공개적으로 공표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느낀 것이며, 예수님 안에 계신 신성에 엎드려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나다나엘에게 무화과나무 아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실 메시아를 대망하며 기도하던 장소이자 기다림의 장소였습니다. 모든 유혹을 이기고 혼자 수행을 하면서 기도하던 그는 친한 빌립이 세례요한의 가르침을 쫓아 광야로 나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고 많은 유대인들이 랍비들의 가르침에 삼삼오오 자신들의 신앙적 학문이 옳다고 주장하며 편가르기를 할 때, 쓸쓸히 혼자 기도하며 깊은 영적생활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기다림은 개인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민족적이며 전 인류적인 기다림으로 이스라엘 역사의 숙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에 오신 그 메시아가 무화과나무 아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묵상하며 그 메시아의 오심을 대망하던 나다나엘을 보고 아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과 육신적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이미 무화과나무 아래서 만났다는 것은 영적인 교통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은 자기의 정직성과 신앙심을 꿰뚫어 보시고 자신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던 내용 기도하는 방법 그리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미 다 아신다고 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영혼이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직 모든 것을 공개하지 않으시고 나다나엘의 신앙고백에 전적으로 순종할 것을 말씀으로 명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장 50절, 51절 예수님께 신앙을 고백한 나다나엘에게 예수님께서는 이제 이후로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 전개될 일들과 나다나엘이 앞으로 체험하게 될 “이 보다 더 큰 일들”을 펼쳐 보이시려고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예수님의 그리스도로서의 공생애가 그 의미였고 그리스도께서 공생에 사역을 통한 가르치심과 기적들 그리고 세상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 십자가에서의 헌신, 최종목적의 부활, 승천 이 모든 것이 바로 “이 보다 더 큰 일들”이며 그 큰 일들로 말미암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다나엘에게 “참 이스라엘” 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그의 꿈을 성취시키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야곱이 벧엘 광야 꿈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옆에 서 계시고 사다리가 하늘에서 땅까지 내려지고 천사들이 이 세상에서 사역한 보고서를 가지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과 그 보고를 마치고 다시 하늘나라의 임무를 가지고 땅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 오래전에 야곱의 꿈과 그 환상 속에서 암시되었던 모든 것들을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 가운데 보고 싶어 했던 것들과 알고 싶어 했던 그 모든 신비한 일들을 실현되는 것들을 보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공생애를 마치시고 십자가에서의 고난과 죽으신 후 여러 차례 말씀하신 부활의 몸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첫 번째 함께 하지 못한 도마와 제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내시고 세 번째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 디베랴 호수에서 예수님을 본 제자 중 한사람이 나다나엘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요한복음 21장 1절부터 2절 예수님의 부활을 세 번이나 목격한 나다나엘은 자신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며 대망하던 메시아가 힘과 권력의 왕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서 멀리하게 하시고 회개시키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역사가 요세비우스에 의하면 나다나엘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 강림의 사건이 있은 후, 곧바로 고국을 떠나 멀리 동 인도 섬에 가서 각처를 떠돌며 복음을 전파하며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회개할 것을 외쳤으며 그 반응은 교회의 부흥으로 이었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던 이교 사제들의 증오를 사게 되었고 푸릴미오의 대를 이어 그 형 아스티아제스가 왕위에 오르자 이교 사제들은 나다나엘이 혁명과 선동을 꾸민다고 모함하여 전신의 가죽을 산채로 벗겨내고, 죽은 시체는 십자가에 못 박고 머리는 칼로 베어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보여줌으로서 공포정치로 두려움에 교회를 말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찢기고 상한 나다나엘의 육체는 알바노 시에 매장되었다가 후에 메소포타미아의 다라지방으로 옮겨졌으며, 6세기에 이르러서는 시칠리아 섬 근처 리파리 섬을 거쳐 839년 사라센 인들의 침략을 피해 이탈리아의 베네벤토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후 983년 로마로 운반되어 오늘날에는 티베르강 가운데 있는 한 섬에 건축된 성 바르톨로메오(카톨릭명) 성당에 마련된 아름답고 고운 홍대리석 영구 속에서 안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오피니언
    • 연재
    2023-04-20
비밀번호 :